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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day

망원시장, 랩으로 패킹되지 않은 삶의 모습.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2. 8. 22.

해외여행가면 꼭 재래시장 '귀경'을 즐긴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나는 생협에서 보는 장을 빼놓고는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망원시장에 드나드는 생활형 재래시장인이다.


가지만한 고추튀김을 가장 바삭하게 구워서 3개에 2,000원에 파는 집,

고등어와 오징어 손질을 깔끔하게 해 주는 집,

삼천원짜리 우유빙수를 가게 안 쪽의 가정집으로 이어지는 작은 뒤뜰의 허브 정원에서 먹을 수 있는 집,

비오는 날이면 꼭 생각나는, 빈대떡 원조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빈대떡 집,

야오이 만화가 가득 차 있고 내 취향으로 신간까지 추천해주는 만화 대여점,

(아저씨, 제발 금요일 밤처럼 사람 많을 때 '노예라고 부르지마', '매니악하게 사랑해줘'를 공개적으로 권하지는 말아주세요.

-----> 요새 뜸한 이유랍니다. 알랑가 몰라.)

좀 비싸도 예쁘고 질 좋은 과일만 가져다 놓는 집.

망원시장 어플이라도 내놓을만큼 나는 망원시장 가게의 곳곳을 그렇게 산책했다.

합정동에 사는 4년 동안 더운 여름에는 땀을 흘리며, 추운 겨울에는 발을 동동 거리며

쇼핑 카트 대신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 살림과 먹을거리를 망원시장에서 사다 날랐다. 


그렇다고 내가 망원시장에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새댁이라고 불러주면 차라리 고맙다. 제발 '엄마'라고만 하지 말아주세요. -_-;;

좋은 거 좀 찾으면 다 애기 먹일거냐고 묻는다. 아니요. 제가 처묵처묵한다니까욧.

게다가 마트에 있는 시식코너는 왜케 없는거냐.





일본 교토의 니시지 수산시장 사진.

이 재래시장에서는 여기저기서 먹어보라고 앞에 내놓는다.

도미토리에서 만난 미국애랑 시장에 같이 갔는데 자기 가이드책에 이 시장에서 무료로 아침밥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나왔단다.


외국의 오래된 파머스 마켓(직거래장터)에서는

우리네 수산시장에서 횟감 따로 사고 식당에서 야채랑 스끼다시 주문 하는 것처럼

핸드메이드 치즈 가게에서 치즈를 사고, 유기농 밀가루로 빵을 만든 곳에서 빵을 사고, 과수원에서 잼을 만든 곳에서 잼을 사고, 과일을 짜서 직접 쥬스를 만든 곳에서 쥬스를 사서 푸드코트에서 먹을 수 있게 마련해놓는다.

카페 용어로 말하자면 컨디셔닝 바가 있어 소금도, 설탕도, 냅킨도, 포크도 직접 가져다 먹는다.

망원시장에도 그런 공간이 작게나마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가령, 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 막 나온 따순 두부에 기름집에서 만든 소스를 곁들여 먹기도 하고

저 집 닭강정에 또 다른 집 샐러드를 매치시켜 먹는 거다. 


또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망원 시장은 입지상 (홍대, 합정 근처) 재래시장답지 않게 젊은 사람들이 바글거리는데

수유시장 청년시장 프로젝트전주 남부시장 '청년 장사꾼 만들기' 프로젝트 같은 시도가 없다는 점이다.

남부시장 젊은이들이 '적당히 벌고 아주 잘 살자'의 모토를 내걸고 시장 오픈식을 했을 때 나는 전주에 있었다. 






전주 남부시장 내 예술 간판들, 그리고 옥상쉼터 모습


젊은 창업가들은 핸드드립 커피를 즐길 수 있는 고양이 테마카페, 핸드메이드 칵테일 가게, 디자인 응급센터, 환경을 생각하는 핸드메이드 재활용 가게, 시원한 맥주를 파는 보드게임방, 부안에서 직접 농사 집은 뽕잎 소시지와 뽕잎버거를 파는 '뽕의 도리', 파리지옥과 네펜데스 등 벌레 잡아먹는 식충식물 가게를 열었다.

blog.naver.com/simsim1968


망원시장에서도 핸드드립 커피를 즐기고

생협 물건이나 유기농산물, 공정무역 먹거리를 만나보고

플로리스트가 있는 꽃가게나 친환경 화장품을 만들 수 있는 공방이 있고,

망원시장에서만 찾을 수 있는 가게들이 생기면 어떨까.

예를들어 참기름 짜는 가게처럼 시장 한 가운데서 커피 향을 비누방울처럼 퐁퐁 날리며 신선한 원두콩을 볶으면 좋을텐데.

반려동물을 위한 수제간식 가게도!



이렇게 직접 화분 만들고 키우는 법도 알려주고

반려견을 위한 수제 간식도 팔고

작은 디자인 가게에서 멋진 화보나 엽서도 팔고

인형 만드는 법도 배우고 손바느질 한 인형도 팔고!

(사진은 모두 영등포 하자센터 '달시장'에 나온 부스들을 찍었다.)


내가 원하는 바는 너무 시장답지 않아서 헛똑똑이 하는 말처럼 들린다면 좀 더 현실적인 제안으로 패스.

시장에서 신용카드로 소액상품권 (1,000원권, 3,000원 권 등)을 사서 돈 안 찾고도 시장 볼 수 있게 하고

대형마트처럼 아이들을 맡기고 장 볼 수 있도록 키즈 놀이공간을 마련해주고

상인연합회에서 시장 내 총액 얼마이상 구입시 근거리 배달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시장 이용자 편의를 봐주는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떨까.


하지만 지금 망원시장은 합정역 앞에 떡 하니 생긴 LG자이 메세나폴리스에 들어오는 '홈플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장에서는 '산자여 따르라'로 끝나는 민중가요가 무한돌림노래로 울려퍼지고

홈플러스 입주 자리에는 망원시장 천막이 세워져 추적추적 가을 장마를 맞는다.


대형마트나 백화점 유기농 마켓이 시장과 다른 점이 있다.

바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일 냄새도, 야채 냄새도, 하다 못해 사람 냄새도 이 곳에선 나지 않는다.

마치 공간 전체가 랩으로 패킹된 것 같은 대형마켓은 단조롭다.

모두 카트를 밀고, 똑같은 품목의 비슷한 과일과 세일 상품을 담고 있는 모습이 어떨 때는 좀 서글프기도 하다.

나이 서른을 넘기고서야 나는 시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장만큼 멋진 곳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시장엔 싱싱한 시간들이 찰랑찰랑 고여있다.

등 푸르고, 팔딱거리고, 쌉쌀한 시간 말이다.  p66~67 부분 발췌, 백영옥 <<마놀로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메세나폴리스의 홈플러스가 곳곳에 세워지는 세상이란 세상 전체가 마치 랩으로 패킹된 것 같은 모습이 아닐까.

PVC 랩에서 환경호르몬 프탈레이트가 새어나와 음식물을 오염시켰듯,

랩으로 꽉꽉 싸인 세계는 삶의 재생산을 불가능하게 하는 단조로움과 인공으로 오염될까 두렵다.


뉴욕시장이 '월마트'의 뉴욕시 진입을 금시시켰듯 홈플러스의 합정동 입성도 무산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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