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파슈멘 공원(요새)
뜨거운 여름, 아지랑이 피우는 더운 도로 옆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공짜여행이 당첨되어도 겨울의 유럽이나 몽고라면 ‘내 돈 내고 동남아 여행’이 좋고
고양이처럼 오래 켜둔 노트북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몸을 부비는,
나는 ‘뜨거운 것이 좋아’ 신봉자.
너무 춥고 길었던 이번 겨울,
뜨거운 마음과 ‘달러빚’ 얻는 처지에 마련한 방콕행 티켓과 고스란히 남은 2주간의 휴가.
방콕에 도착하고 24시간이 채 못 지나 교통사고가 났다.
카오산로드 근처 파슈멘 공원, 해가 나왔지만 아직 여명이 푸르스름한 그 시간에
아침 산책을 하고 한 시간쯤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아침밥으로 어묵국수를 사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뭐,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고 생각하는 찰나였다.
파슈멘 공원 앞 횡당보도를 반쯤 건너다가, 아무 생각 없이
차가 달려오는 방향을 쳐다보고 차가 없어서 냅다 뛰었다.
그리고 도로에 누워서 도대체 어디서 차가 나타난 것인지를 한참이나 의아해했다.
한국과 달리 운전자 좌석이 오른쪽에 있는 방콕은 차가 달리는 방향이 우리와 다른데 말이쥐. -_-;;;
방콕은 10번도 넘게 와 봤는데, 정작 나는 허당이었다.
도로로 쓰러질 때 아스팔트로 내팽개쳐지던 아이팟에서는
한희정의 ‘잔혹한 여행’이 흘러나왔다.
왼쪽 발목은 개방성 골절, 왼쪽 갈비뼈 4개도 골절, 머리엔 왕만한 혹.
그야말로 잔혹한 여행.
응급실에서 다리에 철심 박는 난생 첫 수술을 기다리는데
국립병원에 머무를 것인지, 외국인 전용 사립병원으로 옮길 건지를 물었다.
뭐가 뭔지도 모르고 어딘가 옮기는 것도 귀찮아 여기 있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때‘프라이비트’로 갔다면 말 그대로 방콕서 달러 빚 낼 뻔 했다.
교통사고를 낸 사람은 택시기사였는데 그가 든 보험은
병원비 15,000바트 (우리돈으로 약 57만원)까지만 커버가 되었다.
다리 수술 2번에 10일간 6인실에 입원한 결과 당삼 15,000바트가 넘었다.
우리의 택시기사 아저씨가 병원에 통사정을 해,
다음달에 50,000바트로 상향조정되는 보험료를 일찍 적용받았다. (무조건 떼를 써야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소리지만,
간호사 언니가 보험회사랑 정부기관에 하루 종일 전화 넣더니 바로 적용이 되었다.
이런 뜨거운 ‘유도리’ 정말 좋아.
까딱하다가 달러 빚 내고 한국 대사관에 울면서 전화할 뻔 했다규.
수술이 끝나고 6인실에 입원하니 맞은편에 영국여자가 누워있었다.
(엉? 이건 프라이비트 외국인 전용?? 오우, 노우~그녀는 처음이자 마지막 본 그 병원 뽀리너 입원자.
다음날부터 나는 태국 언니들과 바디랭귀지로 대화하며 맛난 것을 얻어먹고 있었삼.)
진통제인 몰핀을 맞으며 영국의 그녀가 방문객과 하는 소리를 엿들으니,
캄보디아나 미얀마에서 사고가 안 나서 다행이라며 태국의 의료수준이 높으니 ‘돈워리’란다.
(한국의 병원에서도 엑스레이를 찍어보고는 수술은 퍼펙트하게 됐다고 했다. 돈워리였다.)
그 소리에 에헤라디야~자진방아~
를 돌리며 태국의 의료시설에 관한 현지조사에 착수한 인류학자처럼 지내다가 돌아왔다.
합의금은 다시 구입한 항공료 편도요금이었다. 방콕 투 써울~
기존 항공편은 사용할 수 없었다.
국내 보험 하나 없고 여행자 보험 하나 안 들었던 나는
한국에서 돈 들어갈 일 무서워 전치 3개월 간 방콕에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결국 태국 공항에서 내 휠체어를 밀어줄 친구를 따라 한국에 들어왔다.
결국, 뜨거운 ‘유도리’가 좋지만은 않았는데
레깅스처럼 착 달라붙은 경찰제복을 입으신 그 분께서
한국에 돌아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내 보험금을 처리해주지 않아서였다.
그 분의 유도리는 보험금의 몇 %를 요구하는 은근슬쩍까지 포함했다.
(보험금 총액도 한국에서 타박상에 이틀 입원하고 받는 수준이란 말이닷!)
현재 내 친구의 친구인 태국인이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지만
이 느자구없는 유도리를 어쩌란 말이냐.
어쨌든 다리의 붓기는 두 달이 되자 조금씩 빠지고 있고
그 동안 나는 태국의 의료시설과 보험금 ‘유도리’에 대해 알게 되었고
내 페이스북 친구의 상당수가 태국어를 쓰는 간호사 언니들로 채워졌고
그리고,
너무 가소롭지만 한국에서 ‘임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지나가는 버스를 볼 때마다 애처로운 심정이 되고
우리 집 5층 계단을 기어서 올라가고
신발 벗는 식당에서 엉덩이를 밀며 기어가서 자리에 앉고
길에서 무던히 마주치던 개가 갑자기 우뚝 서서 날 쳐다보면 완전 쫄고
5분 거리를 목발로 걷다가 뚜껑이 열린 하수도 구멍에 목발이 낄까봐 히껍하고
그야말로 혼자서 밖에 나다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삶.
저상버스가 지금처럼 간절할 때가 없었다.
그렇게 살펴보니 살다가 ‘임시 장애인’이 될 가능성도, 이미 겪은 사람도 참 많았다.
울 아빠는 지하철 엘리베이터 공사하는 것을 보고
“장애인이 얼마나 많다고,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를 만들다니“
라고 하셨는데
장애인 편의시설은 모든 약자와 인생의 어느 한 순간 장애인으로 지낼 우리를 위한 거였다.
4대강 공사 삽질할 돈으로 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자본을 만들면 좋겠다. 당췌 제발!
목발 짚고, 휠체어 타고도 혼자서 고적한 카페에 들어가
좋아하는 책 읽고 가뿐히 집에 오는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바라는 것은 이거 하나.
아직도 목발을 벗어나기까지 한 달 더 남았다.
-> 바라던 바를 성취!
단골 카페 바오밥에 쳐들어가 아메리카노~ 한잔 하면서 생두 솎는 작업을 했다규. ㅎㅎ
아픈 사람을 에디오피아 커피 노동자처럼 노동시킨 바오밥 사장께서 친히 베이글 대접 ㅋㅋㅋ
생두 중 썩은 부분이 있는 것은 종이컵에 따로 모으고 멀쩡한 놈들은 'colombia' 구멍으로 넣어서 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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