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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3

독일의 슈퍼마켓에서 떠올린 '만일'의 채식주의 몇 년 전 친구들과 집에 모여 만두를 빚어 먹었다. 그중 음식을 잘 하는 니나가 만두피는 한살림이 짱이라고 했지만, 미리 장을 볼 만큼 야무지게 준비한 것은 아니라서 다함께 망원시장에서 재료를 사왔다. 고기가 빠진 채식만두였다. 각자 두부를 으깨고 부추를 썰고 당근을 씻으며 수다를 떨던 중, 어쩌자고 내가 김치찌게는 역시 돼지고기가 자작하게 들어가야 맛있다고 했던 것일까. 입방정. 오두방정. 느자구.그 중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내게 반문했다. "금숙, 채식하는 거 아니었어요?" 이미 채식을 그만둔 지 어연 10년은 된 것 같은데. 순간 이미 헤어진 연인의 안부를 묻는 친구의 질문에 답을 하는 듯했다. 우리... 실은 헤어졌어. 좀 됐어. 우리 채식만두 빚고 있어요~(기억은 안 .. 2017. 10. 22.
복날, 고기 말고 원기 돋는 비건음식으로 몸 보신 절기력은 얼마나 신통한가. 입추가 지나고 말복이 오자 열대야는 싹 사라지고야 말았다. 사주 말고 절기력으로 운세를 점치는 방법이 있다면 난 반드시 절기력 운세를 보고 말 거야. 말복의 자정, 열린 거실 창으로 들어온 바람은 가을의 향취를 담고 있다. 입추가 몰고 온 초가을의 청량한 기운이 여름 밤 공기에 실려있다. 벌써 여름이 가다니 짧은 휴가가 끝나고 직장으로 복귀하는 전날 밤처럼 조마조마하고 불안하다. 아, 벌써 겨울이 올까 봐 무서워. 채식주의자를 지향하지만, 이미 이 혓바닥은 고기에 담금질되고 말았도다. 그래도 닭고기(혹은 개고기 ㅠㅜ) 소비가 많은 복날에는 작정하고서 비건 식당을 찾는다. 자식을 서울로 보내놓고 영양이 부실할까, 과일이 비싸서 못 사먹을까, 대보름날 나물반찬은 해 먹을까, 복날 .. 2017. 8. 12.
채식의 배신, 그리고 행복한 엠마와 돼지 오랜 만에 대학 친구들을 만났더니 무심코 그 때 그 시절 이야기가 튀어나왔다.한 여름에 학내에서 채식파티를 한다고 두부와 부추로 채식만두를 빚었던 일, 그런데 냉장고에 보관을 안 해 그 많던 채식만두가 하룻밤 사이! 소리 소문도 없이 상해버렸던 일 말이다.그 많던 채식만두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상해버린 만두처럼 나도 소리 소문없이 채식(우유, 달걀,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 채식)을 접었다. 고기를 안 먹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이 가끔 "지금도 고기 안 먹지?"하고 물어올 때만 어렴풋이 내가 한 때 그랬었지, 를 기억할만큼 아마득하다.나의 전향은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것조차 죄책감과 자책감을 동반했기에 '그냥'으로 얼버무려왔지만 어쩌면 '김밥에서 햄만 톡 빼서 한 쪽에 버리는' 채식에 거.. 2013.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