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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3

아픈 몸을 살다 인생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뽑자면, 누군가는 어린 시절이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아니다. 대체로, 지금 이 순간이 좋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만 싶은 순간이 간절하게 존재한다. 할 수만 있다면 여태까지 살아온 시간 중 가장 아프고 불행하고 슬펐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약 오 년 전, 지금 내 나이에 언니는 큰 병을 얻었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직장에 다녔는데, 하루 아침에 병원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병명을 들었다. 그 날로 단절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환자와 비환자의 삶으로 극적으로 변하는 것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만큼 엄청난 일인 반면, 바닷물이 이집트 전사를 쓸어버리듯 삽시간에 일어났다. 죽음을 마주한 환자의 삶을 가까이서 겪어보지 못한 우리 가족은 어설퍼서, 얼떨결에.. 2017. 12. 14.
[한국일보] 죽음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한국일보 삶과 문화 2016년 10월 17일 칼럼왕가리 마타이가 죽었던 날, 언니가 죽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왕가리 마타이는 아프리카에 4,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었고 나이로비의 우후루 공원을 지켜냈다. 환경 운동을 하는 나였지만 대한민국 인구수만큼의 나무를 희생해서라도 우주에 단 한 명뿐이었던 내 자매를 살리고 싶었다. 언니는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가 잘 안 된다며 가볍게 검사를 받으러 갔다 하루아침에 암 진단을 받았다. 그날 루시드 폴의 노래를 떠올렸던가. ‘사람들은 즐겁다, 나를 둘러싼,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즐겁다.’ 언니를 비롯해 우리 가족 모두 하릴없이 꺼져가는 생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돌봐야 할지 몰랐다. 그저 살려달라고 의사 선생님께, 그리고 신께 빌었다. 가끔 새벽에 깨면 눈물을 .. 2016. 10. 26.
생일날 아침, 찬란한 유언장 쓰기 어느 날 갑자기 죽을 거 같지 않던 나른한 하루, 딱 이 정도면 더도 덜도 바랄 게 없다고 생각한 겨울 휴가, 그리고 따뜻한 방콕의 길거리였다. 어디선가 차가 나타나 길을 건너던 나를 박았고 말도 밥도 낯선 태국의 병원에서 수술을 2번 받고 휠체어를 타고 귀국했다. 여행할 때 거리에서 먹던 태국 음식은 그렇게나 맛만 좋더만, 병원 밥 맛없다는 만국 공통의 진실에 따라 입맛도 없고 한국말로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는 병상에서 나는 유언장 생각을 골똘하게 했드랬다. 사진: 모모 호스피스 병동의 고여있는 시간 속에서 인생을 차분히 정리할 거라는 기대도 막역한 거였다. 영양분과 미네랄과 진통제를 엄마의 탯줄처럼 연결된 링겔을 통해 피 속으로 공급받는 건강 상태로는, 태아가 엄마 뱃 속에서 어떤 원초적 의지 외에 .. 2013. 10.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