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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12. 14.



인생에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을 뽑자면, 누군가는 어린 시절이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겠지만 나는 아니다. 대체로, 지금 이 순간이 좋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만 싶은 순간이 간절하게 존재한다. 할 수만 있다면 여태까지 살아온 시간 중 가장 아프고 불행하고 슬펐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약 오 년 전, 지금 내 나이에 언니는 큰 병을 얻었다. 어제까지 멀쩡하게 직장에 다녔는데, 하루 아침에 병원에서 죽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병명을 들었다. 그 날로 단절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환자와 비환자의 삶으로 극적으로 변하는 것은 홍해가 갈라지는 것만큼 엄청난 일인 반면, 바닷물이 이집트 전사를 쓸어버리듯 삽시간에 일어났다. 죽음을 마주한 환자의 삶을 가까이서 겪어보지 못한 우리 가족은 어설퍼서, 얼떨결에 잔인해지고 말았다. 나는  그 시절 환자이기에 더 생생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물론, 죽음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한지를 실감하지 못한 '어린 짐승'이었다. 뒤늦게 깨달았지만 내가 죽어갈 때 받고 싶지 않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너무 많이 했다. 아아.        

『아픈 몸을 살다』를 읽으며, 울었다. 내가 곁에서 지켜보았던 '환자됨'의 절망과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삶의 의미가 절절하게 적혀 있었다. 하지만 나를 울렸던 이유는 가없는 절망과 질환의 의미 때문만은 아니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었다면, 이라는 시집 제목이 이렇게 와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다. 누구나 좀 자주 체한다 싶어 대수롭지 않게 동네 의원에 갔다가, 의무적으로 임하는 직장 건강검진을 받다가, 덜컥 죽을 병을 '임명' 받을 수 있다. 그리고 나보다 오래 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람이 그렇게 되기도 한다. 그때가 돼야 비로소 절감하지만, 우리네 삶은 꽤 취약하고 덧없다.

책의 저자 아서 프랭크는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중 심각한 심장마비를 앓고 회복하자마자 고환암 말기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다. 암에서 살아났지만 본디 암은 부러진 뼈가 붙듯 완전한 회복을 장담할 수 없는 병이다. 이 글은  아픈 몸을 사유하고, 그 안에서 생의 의미를 건져 올리고, 아픈 순간마저도 환자 정체성에 휩쓸리지 않고 고유한 자신으로 존재하기 위해 애쓴, 절절한 기록이다. 그렇다고 '감동실화' 같은 투병기는 전혀 아니다. 되려 반대다. 병과 싸운다는 '투병'이라는 단어 자체를 꼽씹게 만든다. 질환을 넘어 질병을 사유하게 하고, 아픈 몸을 살거나 아픈 몸으로 죽는 의미를 동일한 선상에 놓게 하고, 그리하여 죽음 앞에서도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생의 아름다움을 알려준다.


질병은 질환을 앓으면서 살아가는 경험이다. 질환 이야기가 몸을 측정한다면, 질병 이야기는 고장 나고 있는 몸 안에서 느끼는 공포와 절망을 말한다. 질병은 의학이 멈추는 지점에서, 내 몸에 일어나고 있는 일이 그저 측정값들의 집합이 아님을 인식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내 몸에 일어나는 일은 내 삶에도 일어난다. 내 삶에는 체온과 순환도 있지만 희망과 낙담, 기쁨과 슬픔도 있으며, 이런 것들은 측정될 수 없다. (29쪽)


당장 아픈 와중에 있을 때는 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다. 고통은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모두 앗아가 버린다. 고통이 잔혹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오직 몸에 갇힌 채, 내 몸밖과 연결된 모든 세상을 잃은 채, '환자'의 삶만이 남는다. 저자의 말처럼 삶은 잿빛이 된다. 평생을 가꿔온 자신이라는 고유성을 박탈당하면서 죽어가는 것을 누가 원할까.


환자가 되면서, 다르게 표현하자면 의학의 식민지가 되고 자기 드라마에서 관객이 되면서 아픈 사람은 자신을 잃는다. 몸의 느낌보다도 검사 결과에 따라서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그 시작일 수 있다. 그다음에 치료를 서둘다 보면 선택하는 능력, 즉 자기 몸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는 능력을 잃기 쉽다. 그리고 결국에는 단조로운 병원 환경 안에서, 병원의 규칙적인 일상과 규율 안에서 자신이 예전에 좋아하고 즐기던 것들을 잊을 수 있다. 삶은 잿빛으로 변한다. (93쪽)   


그래서 우리는 건강하다고 생각할 때, 혹은 질환이나 고통을 잊을 수 있을 때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 사는 동안 죽음을 곁에 두는 감수성이 있어야 자신인 채로 죽을 수 있다. 나 역시 고통의 와중에도 여전히 창에 비친 아름다움을 감지하는 처연한 '인간다움'을 지니고 싶다. 통증에 함몰되지 않고 아름다고 소중한 가족의 휴식을 생각하고 싶다. 아픈 사람이 병원에서 자신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며 죽어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기에, 다짐하듯 아래 구절을 필사했다. 


통증 때문에 깨어 있던 밤에도 여전히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가족의 휴식은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이런 마음 때문에 통증은 견딜 만해졌다. 질병과 통증은 삶을 조각내지만, 사는 이유는 모두 빼앗겼다고 혹은 사는 이유가 막 사라질 참이라고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다시 조화를 발견하곤 하며, 그렇기에 계속 살아갈 수 있다. 창에 비친 아름다움을 본 그 밤에 통증은 덜 중요했다. 내 몸에서 나를 떼어냈기 때문이 아니라 내 몸 밖으로 나를 연결했기 때문이다. (60~61쪽)

  

그리고...

내가 그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돌봄을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제대로 된 서비스 공급자조차도 되지 못했는데 일부는 이기적인 본성 때문에, 일부는 정말 몰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언니를 '환자'로만 보았다. 병을 가진 고유한 개체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병은 너무나 강력하고 고통은 자신 아래 나머지 모든 삶의 요소를 침잠시켰다. 제대로 된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면 사랑하는 이의 반짝이는 마지막 순간들, 그리고 마지막이기에 더욱 애틋한 삶의 의미를 나눌 수 없게 된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하나만 기억하고 싶다. 환자가 아니라 병이 있는 그 사람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된 돌봄은 아픈 사람의 경험에서 다른 점이나 특별한 점을 인식하며, 그래서 돌봄을 받는 사람은 자기 삶이 귀중히 여겨진다고 느낀다. 우리에게 사람들을 분류할 권리는 없지만 특권이 하나 있다. 바로 각자가 얼마나 고유한지 이해하는 특권이다. 돌봄 제공자가 이 고유함에 마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픈 사람에게 어떻게든 전할 때 아픈 사람의 삶은 의미 있어진다. 나아가 아픈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돌보는 사람의 인생 이야기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면서 돌보는 사람의 삶도 의미 있어진다. ... 치료 제공과 돌봄 제공은 다르다. 아픈 사람을 저버리지 않고 곁에 남는 가족조차 돌보는 사람이기보다는 서비스 공급자가 될 때가 너무도 많다. (80~81쪽)

병원은 자기들이 만든 이름표를 내게 붙였지만 나는 내 정체성을 지켰다. 그리고 내 정체성은 종양이 있는 몸이든 없는 몸이든 여전히 내 몸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 환자, 희생자, 병자라는 말 대신 “에이즈가 있는 사람 persons with AIDS”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 … 암이 있는 사람은 때에 따라 환자일 수도 있고 희생자일 수도 있고 병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을 어떻게 부르든 혹은 자신이 어떻게 불리든 가장 중요한 점은, 암이 있는 사람이 여전히 한 인간이라는 것,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153쪽)


이 책은 이렇게 당부하며 끝을 맺는다. 이 당부들은 언니가 내게 남긴 최고의 선물과도 같다. 나는 언니를 통해 다음을 알게 되었다. 시시껄렁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되돌리고 싶은 시절을 반추하는 마음으로, 언니의 병을 알고서 며칠간 밥을 게워내던 몸을 통해 깨달았던 것이다.  


건강한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을 분리해두는 대신,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하는 권리를 생각해봐야 한다.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하는 기본 권리 중에서도 특히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경험할 권리를 짚고 싶다. 이 순간에서 저 순간으로 내달리면서 살아가느라 사람들에겐 자신이 무엇이 되어가고 있는지 반추할 시간이 없다. 우리는 더 많이 생산하는 법, 몸을 생산 도구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익히면서 인생을 보낸다. … 우리 자신을 생산한다는 말의 의미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자신을 만들어가는 이런 종류의 생산은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여야 한다. (189쪽)


질병을 겪으며 배운 교훈 하나는, 통제의 주체가 나 자신이든 의사들이든 통제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릴 때 더 편하고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몸을 통제하고자 하기보다는 몸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인식하길, 나는 의료인과 아픈 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96쪽)  


이 책은 나의 전 룸메인 씨앗이 내게 보내준 것이다. 그 힘들던 때에 같이 살고 있어서 참으로 위로 받았어.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