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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ble

당근 잎사귀로 해 먹는 마이크비오틱(?) 부침개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8. 15.

육지의 모든 것을 침잠시킬 각오를 한 것처럼 하루 종일 거세게 비가 온다. 휴일 오전 이른 아침, 산책하듯 한적한 카페에 가서 책을 읽으려던 기대를 꺾게 하는 야무진 빗줄기. 그래서 나는 집에서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유유자적 오전을 탕진한다. (, 휴일의 오전은 정말이지 강원랜드에서 탕진한 돈보다 더 허무하게 사라지는구나) 그리고 점심. 부스럭 부스럭 냉장고를 뒤지다 당근 잎사귀를 발견!


비가 오면 왜 부침개가 먹고 싶을까, 하는 물음에 어떤 글에서 전 부치는 기름의 툭툭 튀는 소리가 빗방울이 땅에 닿아 튀는 소리와 비슷해서, 라고 했다. 그 구절을 읽고부터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전이 먹고 싶어진다.


우리 집은 음식물 쓰레기를 죄다 퇴비로 만드는데 양이 많으면 힘들어진다. 특히 여름에는 흙과 섞고 휘젓고 냄새 안 나게 관리하는 일에 손이 더 간다. 물론 더워서 빨리 썩는 장점은 있지만. 매해 여름 룸메와 나는 수박을 맛있게 먹고 괴로워하곤 했다. 음식물쓰레기 한 바가지 나왔어!! 누군가는 수박 껍데기를 깨끗이 씻어 오이 대신 수박껍질 피클을 만든다지만, 원래 오이 피클을 잘 안 먹어서 수박껍질에 들일 정성은 없습니다만.


시중에 파는 당근은 잎사귀가 죄다 제거된 뿌리만 있지만, 도시농부장터 마르쉐@에서 구입한 당근은 토끼가 먹는 당근처럼 당근에 파슬리처럼 생긴 잎사귀가 알알이 붙어있다. 그런데 내가 토끼도 아니고 이 잎사귀를 어떻게 먹는담! 이미 퇴비 통에는 수박껍질이 한 가득, 더 이상 음식물 쓰레기 한 무더기를 만들 수는 없다고. 


그래서 비 오는 휴일 점심에 당근 잎사귀 전을 해 먹었다. 튀기고 남은 기름 처리가 귀찮아 부침개를 했는데, 쑥처럼 생긴 것을 보아하니 쑥 튀김처럼 당근 잎사귀 튀김도 맛있을 것 같다. 내가 해 봐서 아는데 (MB의 추억) 당근 잎사귀 전은 부추 부침개에 꿀리지 않는 맛이 난다.   


『야생초 편지』 쓰신 황대권 선생님 인터뷰 다큐멘터리 보니 황대권 샘은 들판에 핀 ‘잡초’를 하나씩 만지시다 입으로 맛을 보셨다. ‘세상에 잡초란 없다’는 말을 온 몸으로 보여주신 선생을 보며 나도 저런 자세로 부엌에서 마크로비오틱 요리를 해야지 했는데.


오늘의 부엌 판 ‘잡초는 없다’ 당근 잎사귀 마크로비오틱 부침개 편! 


당근보다 잎사귀가 더 큰, 모양 자체로 유기농 시위하는 당근

토끼는 아니지만, 곰은 좋아하지 않을까? 

당근 잎사귀 중 야들야들 여린 애들만 선별. 너무 뻐신 잎사귀는 못 먹는다.

구례에서 우리밀 키우시는 홍순영 농부의 햇밀, '금강밀'로 반죽 


부추 부침개에 꿀리지 않는 당근 잎사귀 전


그치지 않는 비가 온다. 휴일의 오후, 아무도 없는 집, 비 소리와 함께 울리는 프라이팬 위의 기름 끓는 소리, 스피커에서 흘러 나오는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의 요조 목소리. 평범하고 평온한 일상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