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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혼자 하는 여행, 함께 하는 여행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7. 2. 21.


4개월의 여행을 친구와 함께 했다. 물론 같은 집에서 하루 두 끼를 함께 먹는 식구(食口)’지만, 24시간 함께 붙어있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여행 전부터 슬금슬금 들었다. 이건 죽이 잘 맞고 아니고와는 다른 문제다. 내 영혼에 24시간 내내 브래지어를 차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망할 놈의 브래지어를 해 본 없는 이성애자 남자는 모르겠지.) 오죽하면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라는 책이 나왔을꼬. 더군다나 나는 제목만 보고도 그 책을 지를 만큼 혼자 하는 여행을 사랑한다. 혼자가 아닌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가 그간의 여행을 통해 벼려온 감각이었다. 맥주의 잘 빠진 거품이나 커피의 풍성한 크레마처럼 여행의 백미는 혼자라는 것에 있다. 영혼의 브래지어를 풀고 오롯이 홀로, 오롯이 나체로.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의 저자 카트린 지타는 혼자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다. 자기 얘기만 하는 친구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칠 필요도 없고, 연인에게 양보해 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원하는 것을 숨길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낯선 곳을 혼자 여행하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 자신을 힘들게 하는 것과 기쁘게 만드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 알게 된다. … 마치 높은 산 위에 올라 산 아래 마을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세상과 타인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삶을 넓은 안목으로 통찰할 수 있는 것이다.”이라고 말한다.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에서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낯설고 외롭고 정적이고 불안한 상태로 인해 모든 감각이 깨어난다. 이런 느낌을 뭐라 할까나, 내가 있는 모든 곳이 세상의 모든 고독, 아이슬란드가 된다고나 할까. , 한 번도 와보지 않은 땅을 홀로 거닐고 있자면 그곳이 밀림이든, 사막이든, 인구 천만의 메트로폴리탄이든 내게는 오로지 아이슬란드가 된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한나 아렌트는 고독 속에서 나는, 나 자신과 함께 있는, ‘홀로이다. 그러므로 하나-속의-(two-in-one)이다. 반면 외로움 속에서 나는, 모든 타인들에 의해 버려진, 그야말로 하나(one).”라고 했다. 혼자 하는 여행의 고독이란 이런 의미가 아닐까. 내가 둘이 되어 나에게 말을 건네는 대화. 그러니 이때 느끼는 고독감은 커피와 맥주의 쓴 맛처럼 사랑스럽다. 무전 여행처럼 생계를 남에게 의지해야 할 상황만 아니라면 혼자 여행의 고독이란 꽤 쏠쏠하다. 외롭지만 쓸쓸하지는 않다, 단절되어 있지만 고립되어 있지는 않다, 오롯이 홀로 존재하지만 이기적이지 않다, 등등.


혼자 여행하면 자기 그림자를 찍게 된다.



크로아티아 플리체비치 


 

하지만 이후 카트린 지타가 <<내가 함께 여행하는 이유>>를 다시 쓴 것처럼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여행하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계획을 했든, 어쩌다 보니 그랬든, 좌우지간 함께 하는 여행이 펼쳐진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함께 여행하는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알게 된다. 불행히도 대개 나쁜 쪽으로 말이다. 함께 여행한 후 친한 사이가 서먹해지고, 대략 좋은 감정을 지녔던 아는 사람끼리 서운한 감정이 쌓여서 안 보게 되는 일이 흔하다. 사이가 무난하던 부부나 동거인들도 곧잘 박 터지게 싸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의 고독을 사랑하지만 나는 함께 하는 여행에 슬슬 익숙해지고 있다. 것도 좋은 의미로. 카트린 지타는 대개 여행 일정을 짜고 비행기 표와 숙소를 예약하는 등 물리적인 준비는 열심히 하면서 정작 함께 여행할 사람과 어떻게 여행할지 마음을 맞추는 작업에는 소홀하다고 썼다. 맞다. 여행을 함께 하는 사람과 정서를 맞춰가는 작업은 여행을 즐겁게 하느냐, 아니면 여행을 지긋지긋하게 몰고 가느냐를 결정한다. 

 

오랫동안 함께 해 온 내 친구를 새삼스럽게, 깨알같이 발견한다. 그녀는 여럿이 쓰는 도미토리의 욕실에서 수채구멍에 끼인 머리카락을 한데 쓸어 모아 쓰레기통에 넣을 줄 안다. 야간 버스에서는 아주 조용히 소곤소곤, 다른 사람들 잠을 깨우지 않으면서도 나를 까무룩 웃기는 말을 한다. 공원에 누워 하늘을 보는 시간을 좋아한다. 잘 하지도 못하면서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해 우리는 아이처럼 강에서 수영을 하고 빈 공터와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며 놀았다. 배드민턴은 사교춤처럼 둘 이상이 되어야 할 수 있는 운동이라 함께 하는 여행의 진수였다. 구글맵처럼 인터넷에서 필수적인 정보를 찾을 때만 빼고 휴대폰을 잘 들여다보지 않는다. 대신 나와 이야기를 한다. 묵고 있는 숙소의 방을 날마다 청소시키지 않고 욕실 타월을 햇볕에 보송보송 말려 며칠이고 다시 쓴다. 수없이 많은 셀카를 찍으며 여행지를 배경으로 소모하지 않는다


함께 하는 여행이라니, 눈부신 장소에서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택시비나 방값도 나눠내고 한국말도 실컷 하고(주로 남의 뒷다마) 위기 상황에서 기댈 수 있으니 낯선 곳에서 마음이 한결 놓인다. 그런데 그런 것 말고 세상에서는 사소하다 치부되지만 내겐 한없이 중요한 것들을 몸에 밴 듯 행하는 친구를 보는 것이 더 좋았다. 여행의 정서를 맞춘다는 것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고 시간을 분할하고 같이 할 것과 혼자 할 것을 동의해가는 지난한 과정이지만, 의외로 삶의 정서를 확인하는 기쁜 작업이기도 하다. 여행지의 멋진 풍경만큼이나 마음이 환해진다. 인생은 외롭지만 그 길을 누구나 걷고 있다는 위로를 받는다. 


그렇다 해도 다음 여행은 혼자 하지 싶습니다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