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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etc.

[영화] 성전환만큼 중대한 가족의 전환 '어바웃레이'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1. 29.



유럽의 퀴어 퍼레이드를 쏘다니며 가장 보기 므흣했던 장면은 할머니 레즈비언 커플의 오순도순한 모습이었다. 운하를 지나는 퀴어한 배들의 퍼레이드가 하루 종일 펼쳐지던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내 앞에 있던 할머니레즈비언 커플은 소풍 나오듯 샌드위치를 싸와서 서로 마주보며 먹었드랬다. 생전 처음 보았던 화려한 배들의 기억은 이제 가뭇가뭇해졌지만 할머니 커플의 다정함만은 여전히 마음에 남아있다. 아마 다시 암스테르담을 다시 가게 되는 날까지도 잊지 못할 거다.


2016 암스테르담 퀴어 퍼레이드 (사랑의 운하 행렬!)


영화 <어바웃레이>는 댄디하고 귀여운 할머니 레즈비언 커플을 보는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호사롭다. 두 할머니 깨알 개그가 없었다면 약간은 심심하고 밋밋하고 무거웠을 거다. 게다가 뉴욕의 옥상에서 잠옷을 걸치고 담배를 태우는 수전 서랜던은 얼마나 섹시하신지, 담배 광고의 한 장면 같다. 이토록 황홀한 담배연기를 내뱉는 황혼의 할머니라니, 저렇게 늙을 수만 있다면 평생 담배를 피우고 싶을 정도다. 우울은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대신 까다롭고 직선적이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모두 하고 사는, 유쾌하고 멋진 할머니, 영화의 개그코드를 죄다 도맡은 와중에도 담배를 쥔 손가락마저 우아한 할머니, 수전 서랜던.    

  






레즈비언 파트너와 함께 사는 수전 서랜던은 싱글맘인 딸과 손녀와도 동거 중이다. 그러니까 이 집안은 아마존 여전사들처럼 삼대에 걸쳐 온통 여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ree generations, 삼대. (? 염상섭??) 그런데 이 손녀는 4살 때부터 자신이 여성의 몸에 갇혀 있는 남자라고 생각해왔고, 16살의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육체적 성전환을 완수해 남자로서 평범하게 사는 것이 인생일대의 꿈이다. 영화는 소녀에서 소년으로 자신을 찾아가는 청소년을 그린 동시에 그만큼이나 지난하고 힘든 가족 개념의 전환을 보여준다





레즈비언 할머니들과 싱글맘이 함께 자녀의 성전환 과정을 상담하기 위해 의사를 찾아가고, “어차피 여자를 좋아하는 건 똑같은데 그냥 레즈비언으로 살며 어때?”라는 할머니가 있고, 엄마 스스로 그녀가 아니라 이제 라고 말하는, 이런 진보적인 가족마저도 어려움에 빠진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성전환 치료에 부모의 동의가 필요하고, 그래서 아이의 아빠를 찾고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또 다른 가족이 나타난다. <맘마미아>에서 세 명의 아버지 후보가 나타나는 것처럼 두 명의 아버지 후보가 나타나는 시츄에이션. 이래저래 얽힌 유쾌한 막장(?)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성전환만큼이나 중대한 전환기에 들어선 현대의 가족이 보인다. 바람난 가족을 넘어, 퀴어 가족을 넘어, 이제 또 하나의 가족확장판이다. 그럼에도 어떤 신파나 극적인 전개 없이 잔잔하고 유머러스하게 이토록 무거운 주제들을 평범하게 다룬다. 영화 <캐럴> 제작진의 작품답게 차 뒷좌석에서 나뒹구는 구겨진 성전환 동의서, 첫 호르몬 치료를 받고 나오는 아들을 껴안아주는 엄마의 모습, 겨털과 압박붕대와 쩍벌남으로 남자의 정체성을 표현한 섬세함들이 영화를 떠받친다. 물론 그 섬세함은 엘 패닝, 나오미 왓츠, 수전 서랜던의 연기력 덕뿐이다.



지하철 역으로 손자 레이를 맞으러 간 할머니 수전 서랜던은 우리 집에도 이제 남자가 생기다니 이거 기쁜데라며 그를 손자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손자는 자신이 만든 노래가 흘러나오는 헤드폰을 할머니의 귀에 꽂아준다. 그렇게 길을 함께 걷는 낭만적인 장면이 펼쳐진다. 


영화가 끝나고 현실로 돌아온 우리는 엄마랑 저 10분의 1만이라도 말이 통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탄식을 내뱉었다. 성전환처럼 부모님 쇼크사를 불러일으킬 사건이 아니더라도 아주 사소한 것도 같이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모자식 관계가 널렸다. 촛불집회에 가지 말라는 부모님께 그저 '예'라고 대답하고, ‘빨갱이교회 그만 나가라는 부모님과 빨갱이’ 논쟁을 해야하는 마당에 뭔 놈의 커밍아웃? 영화에서 가장 슬픈 장면은 "누가 레이를 사랑해줄까요?"라고며 흐느끼는 나오미 왓츠의 모습이다. 그녀는 딸을 잃는 것을 아파하고 아들이 된 자식이 맞닥뜨릴 세상을 걱정하면서도 '네가 자랑스럽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네 편이야'라고 말한다. 진심이 아닐 때조차, 그래서 '레이'가 그딴 소리 하지도 말라고 할 때조차 스스로 다짐하듯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한다. 영화를 볼 때는 코미디 가족 드라마였는데, 영화가 끝나자 판타지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이유다. 그나저나 이런 영화를 퀴어 영화제나 여성 영화제가 아니라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조으다. 생각해 보니 우리 교회 목사님께서는 중 3 둘째 딸과 함께 이 영화를 보셨는데, 이런 시츄에이션도 참으로 바람직한데? ㅎㅎ      


그나저나 소년으로 나오는 엘르 패닝이 이렇게  섹시 아이돌 같은 여자이기도 하디니, 

역시 부치력은 꾸미기 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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