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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ursion

[파리] 그녀의 그림자 노동 in Paris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6. 21.



첫 도착지 프랑스 파리로 오는 비행기에서 읽은 책은 이반 일리치(Ivan Illich)의 <<그림자 노동>>. 

책방 '만일'에 들렀을 때 여행가면서 읽어야지, 하고 사다놓고 아껴둔 책 중 하나였다. 여행은 뭐니뭐니해도 여행 가기 전 준비할 때 가장 설레이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여행지에서 이 책도 읽고 저 책도 읽고, 하는 생각으로 책을 사쟁일 때, 여행 기분이 퐁퐁 솟아었다. 여행의 달뜬 기운에 빠져 간지럼을 탄 겨드랑이처럼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파리의 폴(Paul) 빵집에서 산 바게트를 센강에서 먹고 마레 지구에서 꽃처럼 장식된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먹는 상상보다, 날씨 좋은 여행지에서 무작정 책 읽는 순간이 더욱 .  



스무 살 초반에 한 번, 그리고 지금, 두 번째의 파리.

이번 유럽 여행의 거의 모든 예약을 도맡은 친구가 첫 숙소를 한인 민박으로 잡았다. 다른 곳은 몰라도 파리와 로마만큼은 한인 민박을 추천하는 글을 어느 여행 책에서 읽은 후라 그러자고 했다파리 한인 민박의 경우 아침, 저녁을 한식으로 제공한다고 했다. 메르시, 파리. 메르시, 한인 민박.   


내가 묵은 파리 중심지에 위치한 한인 민박은 세면대에 붙어 세수를 하자면 등 뒤에 벽이 닿았고, 여름 성수기를 맞아 8명이 복작이는 층에 화장실이 달랑 하나였고, 세탁서비스를 맡기면 숙박객이 쓰는 이층 침대 난간에 빨래를 너는 곳이었다. 한 부부가 하룻밤 자고 불편하다고 예약을 취소하고 나갔을 때에도 그럴만 하군, 하고 생각했다. 도미토리 2층 침대의 아랫 칸에 머문 나는 어느 날은 빨간 침대 시트의 '천막' 아래, 어느 날은 남자 트렁크 팬티가 드리워진 그늘 아래 잠을 잤다. 빨래를 널 곳이 없어서 이모님은 그렇게 도미토리의 2층 침대에 침대 시트와 손님들 빨래를 널어두시고는 했다. 도미토리에서 만난 한 한국인과 나는 생전 모르는 남자 팬티를 차곡차곡 개켜두다가, 밥 먹으러 내려온 남자들 얼굴을 둘러보며 도대체 이 중 누구의 팬티였을까, 궁금해했다. 



그 민박에서 어슬렁어슬렁 5박 6일을 보낸 이유는 딱 2가지였다. 하나는 교통이 좋아 밸리브(파리의 공공자전거)를 타고 어지간한 곳은 다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는 밥이 맛있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아침 저녁으로 남이 차려주는 한식 밥상을 받아보는 황송한 경험이란.


이모님은 '조선족'이었다. 아이엠에프를 맞아 수수료가 싸진 기회를 틈타 1,500만원을 주고 남의 이름으로 한국에 들어왔고, 들어오자마자 한 달 임금을 떼어먹혔고, 식당의 앞뒤로 동시에 밀어닥치는 단속원들을 피해 도곡동 타워팰리스의 70평 집에서 입주 가정부로 7년을 살았다 하셨다. 중국으로 돌아가 한 2년 정도 쉬시다가 한국은 못 들어가고 파리로 오셨다고 했다. 파리에 중국인들이 많이 살아서 중국인이라도 있으니 왔다고 했다. 파리에서 그녀는 아침 저녁으로 한식 밥상을 차려낸다. 된장국, 삼겹살, 겉절이, 파김치, 나물무침, 어묵 등이 밥상에 올라온다. 타워팰리스의 집에서 온갖 김치를 담근 경륜으로 파리에서도 척척 밥상에 김치가 올라온다. 낮에는 장을 보러 중국인 마트에 갔다 이후 민박집 카톡으로 예약한 사람들에게 카톡으로 답하고 예약 스케쥴을 관리하고 빨래를 한다. 그리고 다시 저녁을 차려낸다. 저녁 설거지를 하면 거의 밤 10시가 되고, 다음 날 아침 새벽 6시경부터 아침을 준비한다. 


나는 그녀의 방이 어디있는지, 따로 일하는 사람이 없는데 언제 쉬는지 이모님을 관찰했다. 아마 비행기에서 읽고 온 이반 일리치의 책 때문이었을 거다. 그녀의 그림자 노동이 민박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녀의 방은 도미토리 방의 일층 침대였고, 쉬는 날은 없었다. 잠시 일하다가 쉬는 브레이크 타임이 '휴가'였다. 가끔 숙박객들이 "이모, 파리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요?" 라거나 "파리 어디 가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을 해댔다. 그러면 이모님은 "1년 내내 내 오르세 미술관과 파리 유람선 한 번 타봤는데 어찌 아누?"라고 답했다. 24시간 사람이 왔다갔다 하는 민박집이라 이모님은 민박집을 축으로 자전하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가끔 성수기에 빈 자리가 없으면 이모는 식당의 나무 의자 4개를 빼곡하게 붙인 다음 그 위에 전기 요를 깔고 주무셨다. 공동 공간인 식당과 그 옆 화장실에는 밤새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가거나 신라면 컵라면을 먹는 사람, 화장실에 가는 사람, 새벽에 들어와 샤워하는 사람들이 엉켰다. 그렇게 밤을 보낸 그녀가 한낮에 밖에 나가는 용무는 간단했다. "요 앞 슈퍼에 갑니다" 혹은 "웃층에 청소하러 갑니다". 문이 닫혀 있는 경우 몇 분 기다리고 있자면 어느 순간 이모님이 나타나셔서 문에 붙은 포스트잇을 떼고 들어오라고 손짓한다.  



한 십년 전에 파리의 한인 민박에 묵었던 친구가 민박집 일을 '조선족'들이 하고 있다고 했다. 여전히 요리, 청소 등의 돌봄 노동을 조선족 이모들이 맡고 있었다. 조선족 이모들은 서울을 벗어나 한국인들이 머무르는 세계 곳곳에서 '그림자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세계화의 하인들'이라는 책 제목처럼 이 곳 파리에서, 로마에서 우리의 '하인들'이 되어 밥상을 차리고 청소를 해냈다. 그리고 아침 저녁을 주는 한인 민박은 생각보다 쌌다. 아마 그녀들이 24시간 붙박이처럼 수행하는 노동의 대가가 싸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자 노동>>은 네이딘 고디머(Nadine Gordimer) 소설 <<버거의 딸>>에 나온 주인공을 소개한다. “자신이 누리는 건강하고 평범한 삶의 조건이 곧 타인의 고통 위에 서 있는 것임을 외면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여자를 말이다. 나는 <<그림자 노동>>을 읽으며 그녀의 밥상을 받고 그 밥상의 에너지로 파리를 거닐었다. 타인의 고통은 아침 저녁으로 눈에 밟혔지만, 반면 파리의 길들은 너무 근사한 곳들을 많이 품고 있었고 나는 참으로 갈 곳이 많아 마음이 바뻤다. 


하지만 이반 일리히가 <<그림자 노동>>에서 계속해서 차이를 강조하는 자급자족의 노동 (토박이 노동)과 그림자 경제의 차이를 확연히 알 것만 같다. 그는 이렇게 썼다. 

두 가지 무급 활동-임금 노동의 보완물로서의 그림자 노동과, 임금 노동 및 그림자 노동 모두에 대해 경쟁하고 대항하는 자급자족적 노동-사이의 진짜 차이점은 여전히 간과될 수 있다. … 성장 지향적 노동은 유급이건 무급이건 획일화되고 관리되는 활동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29쪽) 

탈 중심화와 대안적 기술과 의식화와 해방을 도모하는 사도들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차이를 명시적이고도 실질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지 못한다면 이들의 노력은 불가항력으로 뻗어나가는 그림자 경제에 대해 단지 색소와 감미료와 정체된 이상의 맛을 첨가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10쪽) 

      


파리를 떠나 니스로 온 순간, 에어비앤비로 잡은 숙소에서는 아침 저녁 상을 스스로 차려야한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자니 이모님 밥상이 벌써 그립고, 밖에서 사 먹자니 빵 종류로 끼니를 때우는 글로벌한 입맛도 아니라, 살 빠지겠다. 그래도 스스로의 밥상을 스스로 차려먹는 하루가 뿌듯하다. 남의 그림자 노동이 아니라 나를 위한 자급적 노동이 밥 한 톨만큼은 서린 밥상. 이제 다시 저녁 밥 지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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