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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몸의 수분이 빠져 나가는 나이에 수분을 말린 드라이플라워를 만났네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6. 1. 2.

결국 먼지가 앉아서 내 노동력을 착취하고야 마는, 부피와 면적을 지닌 의미 없는 장식품을 키우지 않는다. 아니, 키우지 않았었다. 요즘 합정동과 망원동, 연남동 골목골목 들어차는 작은 꽃집들이 생기기 전까지는. 수분을 날려 바스락거리는 빨간 고추처럼 바짝 말린 드라이 플라워가 '다이아몬드는 영원하다'고 외치는 드비어스 버금가게 오래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꽃을 사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고 낙엽을 주워다 쓰기도 하면서 식탁에도, 베란다에도 풀때기만 넘치던 집에 꽃이 살포시 놓이게 되었다.   







꽃을 놓다가, 한 10년 전 쯤 쿠바에서 우연히 한 가정에 초대받았을 때가 생각났다. 당시 미국의 무역 제재로 물자가 부족한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는 다른 나라에서 골동품 취급을 받는 온갖 ‘클래식’ 차들이 거리를 질주했다. 나를 식사에 초대한 집에도 70년대 영화에나 나올 듯한 ‘클래식’한 냉장고가 하나 있었는데, 손잡이가 뜯겨나간 자리에 숟가락을 꽂아 놓은 것이 보였다. 마치 초가집 문고리를 닫기 위해 숟가락을 꽂아 놓듯이 말이다. 언뜻 봐서 거실과 부엌을 제외하면 방이 하나인 그 집에는 아이 셋과 부부, 이렇게 다섯 명이 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작고 누추한 그 집의 곳곳에 이름 모를 들꽃과 손 때 묻은 살림이 뽀드득 소리가 날 듯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당시 나는 꽃을 선물이랍시고 주고 받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가는 이명박 전대통령의 ‘실용주의’ 뺨치는 젊은이였는데, 처음으로 인테리어의 갑은 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잘 사는 나라에서 원예나 정원, 플로리스트의 인기가 높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쿠바인이 손수 차려준 음식을 먹으며,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공간을 꾸릴 수 있다고 느꼈다. 가난하고 허름해도 그 사람의 존재를 알뜰살뜰 재현해내는 삶의 공간이란.






내가 사는 집도 가득 찬 짐에 공간이 짓눌리지 않고,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가재도구에 부딪히지 않는, 바람길이 트인 공간이면 좋겠다, 유행하는 인테리어보다 산책하다 업어온 솔방울과 나뭇잎이 소박한 살림 위에 살포시 앉아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라고 다이어리에 적었다. 반지하에 살든, 옥탑방에 살든, 고시원에 살든, 내 존재가 각인된 공간.


10대에는 먼지외 티끌을 제 스스로 털어낼 수 없는 식물이라는 존재가 무생물처럼 여겨졌었다. 20대에는 물만과 햇빛, 바람이 있으면 홀로 자라는 풀때기가 기특해서 책상에 화분 하나를 키우기 시작했다. 여전히 왜 봄이 오면 당연히 꽃이 피는 것을, 사람들이 벚꽃구경을 하고 꽃놀이를 가는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30대에 이사할 때는 이삿짐 중 부피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화분이 되었다. 급기야 40대를 앞두고는 내 돈 주고 꽃을 사기 시작했다. 계절이 가고, 나이를 먹고, 사람은 안 변한다는데, 나는 자꾸 변해가고. 또 그런 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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