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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

[테이크아웃드로잉] 작고 오래된 단골집을 가질 권리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5. 12. 21.


이제는 너무 떠버린 한남동 길을 추적추적 걸어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진달래에이드를 한 잔 마시고 왔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이자 동네 미술관이자 예술가들이 머물고 소통하는 레지던시. 

예술가를 초대해 전시회를 열고, 동네에 이 예술스러운 기운을 전파하고, 맛있는 디저트를 팔고, 무엇보다도 카페의 생존이 놓인 상황에서도 9년 동안 한 번도 작가의 지원을 멈춘 적이 없었다. 







영화 '비포선셋'에서 에단 호크가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했던 (그리고 거기서 줄리 델리를 다시 만났지!) 파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그런 것처럼.  <<유럽의 아날로그 책 공간>>에 따르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서점 주인은  "갈 곳 없는 작가, 꿈을 키우는 무명인들에게 기꺼이 침대와 수프를 내주었다. 작가를 꿈꾸는 젊은 몽상가들은 이곳에서 책을 팔거나 책을 읽거나 책을 썼다." 나름 예술가들에게 서울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되어 왔던 '테이크아웃드로잉'이 강제집행과 법적인 소송에 시달라며 쫓겨날 위치에 처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는 “낯선 이를 냉대하지 말라. 그들은 변장한 천사일지 모르니.(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 LEST THEY BE ANGELS IN DISGUISE.)”라는 문패가 걸려있지만, 현실에서는 타인을 품어주는 존재들이 내팽개쳐지고 있다. 자본이라는 '악마의 맷돌'에 의해서. 테이크아웃의 자리는 거대 자본을 주단처럼 깔고 있는 CJ 계열의 투썸플레이스가 입주할 예정이라고 한다. 


예전 홍대 앞에는 리치몬드 빵점이 있었다. 이제 그 자리는 '앤절이너스'가 건물 전체를 통으로 세 내고 24시간간 영업을 한다. 아마 그 즈음부터 홍대에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과 중국인들만이 거리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리고 신촌이 지고 홍대를 뜨게 한 무형문화재 같은 예술가들은 상수동으로, 연남동으로 떠밀려갔다. 이제 상수동과 연남동까지 밀어닥친 자본의 흐름에 그들은 어떻게 연명할까. 


홍대가 신촌이 파르르 죽어버린 노선을 충실히 따라가고 있다고들 한다. 대형 프랜차이즈와 스파 브랜드가 거리를 메우고 작고 오래되고 주인장의 취향의 느껴지는 가게들이 사라져버린. 도시는, 특시 서울은 다이내믹한 맛에 매력이 있다고 하지만 그 속도가 기존의 문화적 자산을 쓸어버릴 정도여서는 안 되고, 자본이 건물을 통째로 세 내는 대형 프랜차이즈만이 살아남을 정도여서는 안 된다. 작고 오래된 가게들을 도시 산책처럼 기웃거리고, 아는 가게가 부담스러울 때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들어가 익명성도 즐겨주고, 그런 도시 생태계의 다양성이 동네를 살게 한다. 지금의 홍대는 신촌처럼 '문화백화현상'이 일어나는 중이라, 여기가 신촌인지, 신천인지, 아니면 스몰한 명동인지 구분이 안 가는 망조가 들어버린 것 같다. 






     

      

2015년 12월의 <작아> 주제는 '작고 오래된 단골집을 가질 권리'이다. 제목이 마음을 울려서, 시험기간 벼락치기 하는 수험생처럼 온 정신을 쏟아서 읽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과 유럽에선 작은 동네 가게를 지키려고 많은 사람들이 막아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져요. 우리는 건물주와 세입주만 갑과 을이 되어 싸우는 거죠. 갑과 을 사이에 시민권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배웠어요." 


홍대 앞 '삼통치킨'이 건물주와 합의를 본 것처럼 '맘상모(맘 편히 장사하고픈 상인들의 모임)'의 활동이 성과를 보이고, 성동구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 조레가 생기고, 서울시도 젠트리피케이션 정책을 고민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작아'의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 상가 최소 임대차 계약은 9년이고, 일본은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해도 그 사유가 정당한지,  퇴거료 지불 여부와 그 액수가 중요한 심사 대상이라고 한다. 이미 많은 작고 오래된 가가게들이 쫓겨나고 말았다. 나 역시 동네 여기저기에 새 건물이 올라가면서 '정광수 돈까스 가게'와 '미광 세탁소'와 감이 몇 개 달렸는지 확인하던 옆집 앞마당의 감나무를 잃었다. 작고 오래된 단골집을 가질 권리도 시민권이라는 것을 잃고 나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