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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life

머털도사 알로에의 보은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5. 4. 7.

봄맞이의 계절.

사계절의 다채로움을 칭송하기 앞서, 스티븐 제이 굴드의 말이 떠올랐다.

'진화란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다양성이란 어쩜 이렇게 많은 수고와 비용과 자원을 필요로 한단 말인가, 

그러니 진화=다양성이란 말은 자고로 맞는 말.


뭔 소린고 하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주말을 바쳐 옷 정리며 커튼 정리며 이불 정리를 해야 한다는 거다. 

한 때 태국에서 친구 이삿집 싸는 거 도와주다가 부러워 죽는 줄 알았다. 

옷과 이불, 신발이 그저 여름용 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계절의 다양성을 감당하기 위한 노동은 알지 못하는

이 단촐하고 소박한 살림살이여.      


이번 봄에도 여지껏 겨울 옷 정리을 못 끝내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판국에 

(세탁소 선불인 우리 동네에서 월급 전에 겨울 옷 드라이 맡기기도 무섭고) 

보다보다 못하고 화분 분갈이부터 시작했다.


알로에 때문이었다. 


세탁기에 빨아 바짝 줄어든 울 니트를 어거지로 있은 것처럼, 

똥배를 감당 못하고 터져 나올 듯 위태로운 바지 후크처럼, 

마구 흔들어든 샴페인 거품처럼, 

알을 깨고 나오는 새처럼, 

알로에가 화분의 세계를 부수고 삐져나올 찰나였다.





알로에 수분크림을 만들 목적으로 삼년 전 쯤 알로에를 집에 들였다. 

물을 가끔 한 번씩만 줘야 하는 선인장 계열의 식물이라는 상식도 모른 채, 

물이 조금만 부족해도 잎이 파리파리해지고 마는 수국이나 국화, 혹은 허브 다루 듯 

물을 철철, 철푸덕 주었음에도 알로에는 쑥쑥 자랐다. 

한 마디로 알로에는 축축한 홍수의 역경 속에서도, 

남향집이 아니라 일조량이 턱없이 부족한 역경 속에서도 재크의 콩나물처럼 자라났드랬다. 


그리고 머털도사가 머리카락을 뽑아 자기를 복제하듯 

자기 옆에 똑같이 생긴 새끼 알로에를 달고 함께 컸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화분이 터져 나오려는 모양새에 놀라 

예정에 없던 알로에 화분 분갈이에 착수했다.




화분에서 뽑아내고 흙을 털어낸 새끼 알로에가 30~40개쯤 되었다. 

직장인 여성환경연대에 가져가 나눠도 남겠고, 

이미 나는 머털도사 알로에 덕분에 알로에 화분만 5개

어쩐다? 


페북 '망원동 좋아요'에 살포시 알로에 분양을 올려보았다. 

순식간에 알로에를 받고 싶다는 댓글이 달렸다. 

역시 우리 망원동 주민들. ㅎㅎ 

안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어쩌고 저쩌고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총 8명에게 알로에를 분양했다. 

(우리 사무실에서 분양은 따로~) 

망원동 주민들은 우리 집까지 이 새끼 알로에를 받으러 직접 왕림했다.  

와~진짜 오손도손 동네 코스프레! 








원두커피 먹고 남은 포장지에 알로에를 포장했다. 

진정 쓰레기 없는 선물 포장! (선착순 2명만 원두포장이고 그 뒤에는 신문지 포장 ㅎㅎ)

화분이 없을 경우 원두커피 포장지 밑 부분에 구멍만 내면 흙을 채워 화분으로 쓸 수 있다. 

내부에 은박으로 방수 포장이 되어 있어있어서 물을 줘도 포장지가 찢어지지 않는다.

내친 김에 포장지에 넣은 다음 무지 스피커 위에 놓고 디스플레이 한 판.








것들은 '망원동 좋아요'를 통해 알로에를 분양받은 주민들의 선물.

직접 만든 딸기쨈, 마카롱 모양 천연 비누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 그리고 우엉차(?) 

다들 무슨 수공예 클래스라도 운영하시는지 

보기에도 먹기에도 바르기에도 흡족한 선물들이 우리 집에 당도했다. 

룸메가 나보러 살림 참 잘한다며, 장하다는 눈빛을 찡긋 보냈다. (암~ 그렇고 말고) 

머털도사 알로에가 보은을 하고 집을 떠난 기분이었다.



알로에 안녕! 





알로에 키우는 법 


1) 새끼 알로에는 그늘에서 3일 쯤 말렸다가 흙에 살포시 심는다. 

(경험상 안 말리고 바로 심어도 된다.말했지 않은가, 역경을 이겨낸다고.)


2) 물은 겉흙이 바짝 말랐을 때만 듬뿍 준다. 겨울에는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준다. 


3) 햇빛이 적으면 웃자란다. 웃자라면서도 어쨌든 자란다. 


4) 겨울철 실외에서 월동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베란다에서는 힘들어 하기는 해도 결국 살아남았다. 

(실내로 들여놓기 귀찮아 한겨울 베란다에서 죽는 식물들은 과감히 포기하는데, 

지난 겨울 춥지 않아서인지 알로에는 모두 살아남았다.)

그래도 따뜻할수록 잘 자라고 아주 추운 해에는 베란다에 두면 얼 수 있으니 

겨울철에는 실내로 옮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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