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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버려진 나무,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목재로 만든 신발장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10. 20.

집을 고친다는 것은 트럭 분량의 쓰레기를 만들고 버린 다음 트럭 분량의 새 자재로 집을 채우는 과정이었다. 멀쩡하거나 구조적인 문제가 없는 경우, 보기 좋으라고 뜯어내서 바꾸지 않으려 노력했고 되도록 집이 원래 가지고 있는 자재를 그대로 두었다. 그래서 울 엄마는 아니 들인 돈이 그렇게 많은데 어디를 고친 거냐는 일침으로 인테리어 잡지에 나온 샤랄라한 집과 우리 집을 자꾸 비교하시고는 했다. (엄마 미워, 다 이유가 있단 말여 -_-;;) 하지만 한 번 내릴 때마다 4.8리터의 물을 쓰는 변기 대신 16리터를 잡아먹는 옛날 변기를 들어내고 단열이 소홀해보이는 샷시도 일부 뜯어내고 곰팡이가 지워지지 않는 욕실 천장을 철거했더니,  아니, 이럴수가.



      

말 그대로  쓰레기가 한 트럭분이 거실에 쌓여 있었다. 쓰레기 매립장의 가장 큰 구성원인 건축 폐기물을 마구 만들어내고 말았던 것이다. 역시 뭘 안해야 써, 그게 질~환경을 위한 거랑께, 라고 자조했지만 이미 집은 고치기 시작했다.


이제라도 '뭘 안해야 써'의 정신에 입각해 가구는 안 사기로 했다. 나의 러블리 절친은 그 때 마침 이사를 했는데 짐을 줄인다고 사용하던 테이블과 책장, 장농을 집들이 선물로 하사하였고, 나의 전 룸메도 고양이 발톱이 쓰나미처럼 지나갔지만 귀엽고 푹신한 패브릭 쇼파를 선물해주었다. 단, 신발장만 빼고 말이다. (speical thanks to 주발, 씨앗)



거실에 서서 이육사의 '광야'를 읊어야겄다.



왼쪽 철문이 현관문인데 현관 옆에 아무 것도 없어서 신발을 넣을 곳도 없었을 뿐더러 거실이 훤히 들여다보여 가림막이 필요했다. 작은 잡이 훵해보여서야 쯧쯧쯧. 현관과 집 사이에 중간문을 달면 단열과 방음에도 좋고 집이 아늑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현관 쪽이 워낙 좁고 돈도 생각보다 좀 들길래 천장까지 곧게 뻗는 신발장을 제작하기로 했다. 신발장 겸 가림막 용도로 말이다. 


'뭘 안해야 써'를 지켜가되, 꼭 필요한 가구가 생기면 '문화로 놀이짱'에서 주문하려고 마음을 먹었드랬다. '문화로 놀이짱'은 건설현장에서 버려진 목재나 폐가구에서 나온 목재로 가구를 만들고 목공 DIY 교실을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월드컵 경기장 맞은편에 을씨년스러운 대형차 주차장이 있는데, 주차장 한 가운데 혼자만 발랄한 주황색 컨테이너 박스가 바로 사무실이다. 그 앞에서 청년들이 모여 가구나 집, 카페에 쓰이다가 이제는 버려진 목재의 타카와 못을 일일이 뽑고 상처난 곳을 다듬는다.




대형차 주차장 한 가운데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문화로 놀이짱' 두둥



사진 출처: '문화로 놀이짱' 홈페이지 http://www.norizzang.org



버려진 가구의 이름,  너에게 이름을 불러주자 다시 존재가 되었다.



카페나 상점 리모델링 공사에서 나온 폐목재, 수집하고 다듬는 과정을 거친다.



잡수지 마세요. '문화로 놀이짱'에 양보하세요. 가구를 버릴 때는 02 335 7710으로.


그런데 겉만 목재처럼 보이는 합성자재나 시트지를 붙여놓은 가짜 나무나 MDF 자재는 재활용하기 어렵다. 비싸지만 사용하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에 삶을 맞추고 나에게 쓸모가 다 하고 난 후에도 누군가에게 쓸모가 있으려면, 진짜 나무 목재라야 한다. 집을 짓거나 가구를 살 때 애시당초 '쓰레기가 되지 않는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게도 온당한 조처고.




신발장의 판을 짜고 내부에 중간 선반을 놓은 모습, 드디어 거실이 거실답게 :)




신발장 겉면은 목재를 뒤집어 잘게 자른 다음 모자이크 형식으로 붙였다.



사진출처: 공사해주신 멋쟁이 님 


'문화로 놀이짱'에 신발장과 싱크대 문을 폐목재로 작업해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행사 준비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계셨드랬다. 그들이 주문가구를 만들 수 있는 날은 내가 이사하고도 거의 한 달이 지나는 시점이었다. 아아 패스. 신발을 머리에 이고 부엌 벽에 쓸 목재가 없는 채로 어찌 한달을. ㄷ ㄷ ㄷ 그래서 폐목재 자재라도 구입하게 해 달라고 전화와 메일로 읍소해 직접 '문화로 놀이짱'에 찾아가 창고에서 적당한 자재를 골랐다. 창고에는 종류도 색도 질감도 다른 나무들이 몸에 못 자국이 뚫린 채 고이 놓여 있었다.  Special thanks to 많이 사지도 않고 원래 자재가 아니라 가구를 만드는 곳인데 자재 사러 온 '진상'을 친절히 대해주신 '문화로 놀이짱'


'문화로 놀이짱'은 폐자재라고 결코 싸지 않다는 점을 방문 전부터 강조했다. 수거하고 일일이 못과 타카를 뽑고 바로 자재로 쓸 수 있도록 다듬는 과정이 있는데, 보통 폐자재나 재활용이 새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쌀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신발장을 만들어주실 목수님과 '문화로 놀이짱' 창고에 함께 갔는데 보시기 전에는 '폐목재'라는 말에 당황하셨으나, 손질없이 바로 쓸 수 있도록 정리된 모습에 그 자리에서 바로 부엌 벽에 쓸 목재도 주문하셨다. 만약 '문화로 놀이짱'에서 폐자재를 손질해놓지 않았다면 웬만한 목수들께서 맡아주지 않으실 거다. 걸레받이와 천장받이에 쓰는 나무도 '문화로 놀이짱'에서 구입하고 싶었는데, 그 때는 없어서 못 샀다.


같은 마포구에 전철 한 코스 거리라, 2만원에 집까지 한번에 배달해주셨다. (배달비는 따로에요. 우리집은 얼리베이터 없는 4층임;;) 신발장 및 뒷베란다 단 높이고 부엌 벽 등에 사용한 폐목재의 값은 약 25만원 정도이다. 집 전체로 보았을 때 절반 정도는 '문화로 놀이짱'의 폐목재를, 나머지 절반은 새 목재를 사용해야 했다. 100% 폐목재를 쓰고 싶었지만, 색깔과 때깔을 적절히 맞추기 힘들었고 (폐목재만 계속 고집하면 나름 장인정신 있는 목수님, 힘들어하심;;), 많은 양을 한꺼번에 구하기 어려웠다. 대신 다양하고 특색있는 다품종 소량의 목재가 첩첩이 쌓여있다. '문화로 놀이짱'은 비싸다고 경고까지 하셨지만, 알고보니 새 자재의 반 쯤 되는 가격이었다. 오 땡큐!



신발장 가림막이 생겨 현관과 거실 공간이 분리되었삼!



     

디즈이즈 우리집 신발장



신발장의 옆면



신발장의 앞면



신발장 손잡이, 꽃이 팔랑팔랑



거실의 한 쪽이 완전히 가려져서 나는야 만족.



과거를 몸에 부려놓은 폐목재, 폐목재는 못이나 타카 자국, 그리고 간혹 얼룩이나 상처가 있다. 지나간 연애의 기억과 흔적이 내가 나인 채로도 행복할 수 있는 새 관계를 만들어 주었듯, 이 나무도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채 이토록 맘에 드는 신발장이 되었다. 


'문화로 놀이짱'이 미국의 'build it green'처럼 주문가구 뿐 아니라 폐목재와 건축자재까지 폭넓게 다루는 곳으로 커가면 좋겠다. 4.8리터만 쓰는 변기, 누군가의 집을 지켰을 문짝과 샷시, 부엌 싱크대, 그리고 폐목재와 건축자재를 발품팔지 않고 한 곳에서 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BUILD IT GREEN 뉴욕지부 누리집 http://www.bigny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