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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부엌]헬렌 니어링 스타일의 부엌놀이3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7. 11.

토요일 오전마다 양화진 공원에서 '원예 가꾸미' 자원활동을 하는데

(으쓱으쓱~늙을 때 대비해서 벌써부터 공동체 활동 중)

원예에 일가견이 있는 한 분께서

식물에 주는 물은 깨끗하고 먹을 수 있는 물이어야만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예쁜 꽃이나 나무들에게 꾸정 물 세례를 내리고 싶지는 않지만

몇 년 동안 주로 설거지 허드렛 물로 베란다 채소와 화분의 양식을 제공해 온 나로서는

'잉? 아프리카 어린 것들은 몇 킬로 떨어진 곳까지 걸어가 양동이에 깨끗한 물을 이고지고 나르는디'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서울에는 깨끗한 물이 넘쳐나니 (수돗세는 을매나 싼지!) 깨끗한 물을 쓴들 무슨 흉이 되겠냐마는

한 여름 여성환경연대 옥상텃밭에 아침 저녁 나절로 수돗물을 퍼붓다 보면

소꼽장난 같은 옥상텃밭 한다고 지금 수돗물을 철철 쓰네 그랴, 라는 주객전도의 심정이 되고 만다.

우리는 빗물저금통 (빨간색 고무 다라이 큰 통)을 4개나 대기시키고 있는데도

8월 초 쯤 비는 안 오고 햇빛은 이글이글 타는 시기에는 빗물통도 바닥나고 수돗세는 엄청 나와서
같은 건물에 있는 다른 단체들 눈치를 슬슬 보기에 이른다.


에너지정의행동의 자료에 따르면 도시의 전기 에너지 1~18%는 물 운반과 처리에 사용된다고 한다.

하천에서 물 1톤을 퍼내는데 전기에너지 0.2 킬로와트가 들고 정수하는데는 0.12킬로와트,

이 물을 원하는 곳으로 보내는데 0.2킬로와트가 사용되었단다.

그러니까, 물도 에너지다!


현미쌀을 씻고 난 물은 국을 끓일 때 이용하지만 가끔 국이 한 솥 차 있을 때,

미나리나 부추를 싱크대 가득 엎어놓고 물에 다듬어 씻을 때,

애벌 설거지 한 그룻을 헹궈내고 남은 비교적 깨끗한 물을 하수도에 흘려보낼 때,

나는 그 물들이 아까워 괜시리 애간장이 탔다.




그 전 집에서는 '두레생협 유기농 우유통'으로 깔맞춤 해

설거지 허드렛 물, 혹은 채소 씻고 남은 물을 모아두었다가 화분에 주었다. 

우유통 뚜껑에 구멍을 뚫어 물조리개처럼 쓰기도 했다.

비교적 깨끗한 물을 모아두었지만 2년간 쓰다보니 덕지덕지 때가 껴서 추접스러븐 상태가 되었다.

(친환경이란 본디 '올가 유기농 매장'같은 뽀대는 커녕, 머리 나흘에 한 번 감은 것처럼 좀 추접스러워줘야 한다.)

기특한 우리 집 식물들과 채소들은 태생적으로 '머슴 기질'을 타고났는지

체기 한 번 없이 허드렛 물을 마시며 쑥쑥 자라주었다. 짝짝짝!


그런데 고물상 수준의 이 우유통을 부엌 뒷편 발코니에 숨겨두었다가

설거지나 요리할 때 들고 와서 허드렛 물을 채워 다시 내놓고는 하는 과정이 힘들긴 했다.

 물이 가득 찬 설거지통을 들어올려 우유통에 부어주는 과정이 무겁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방울방울진 물이 부엌 바닥에 떨어지기도 하고

그럼 걸레로 다시 닦고는, 뭐 참말로 지지리 궁상이었다.

남들이 보면 '왜 저러고 사냐'라고 생각할 거였고, 때때로 나도 '왜 이러고 사는지 몰라'라고 대답할 판이었다.


그러다가 이사를 오면서 좀 더 쉽게 허드렛 물을 받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깨끗한 물만 받는 하수구, 더러운 물이 버려지는 하수구, 이렇게 두 개로 만들면 좋겠지만

그런 건 기술력과 재력을 요하므로 단순하게 가기로 했다.

싱크대 아래 하수도로 이어지는 관의 방향을 다른 곳으로 돌려

싱크대로 버려지는 물이 뒷베란다에서 대기 중인 고무 다라이에 고스란히 모아지는 거다.



싱크대 아래의 모습.

배수통이 하수도로 향하지 않고 옆 면으로 방향으로 틀었다.

싱크대 선반에 구멍을 내서 배수통의 길을 만들어주었다.



배수통은 하수도가 아닌 부엌 옆에 위치한 뒷베란다의 벽으로 나오게 된다.

싱크대에 붙어있는 벽면을 뚫어 배수통을 끼울 수 있도록 만들었다.

시멘트 뚫는 아저씨가 무슨 기계를 가지고 오셔서 반나절에 걸쳐 뚝딱 작업해주셨다.



부엌 옆에 위치한 뒷베란다의 모습,  

위에 위의 사진은 페인트 칠하기 전의 모습이고 바로 위 사진은 나름 페인트 칠한 모습이라 벽 색깔이 다르다.

그래도 그 구멍이 그 구멍이 맞습니다요.



이 벽면 바로 옆에 싱크대가 있고 싱크대 아래로 배수통이 이어져 있는 구조이다.

구멍 높이는 나의 전 룸메 깡샘이 주신 빨간 다라이의 높이와 깔맞춤.

분홍색 바가지도 깡샘의 협찬이시다. ㅎㅎ

싱크대에서 물을 버리면 저절로 플라스틱 통으로 물이 모아진다.


생선을 먹거나 양념이 찐득하거나 좀 지저분한 설거지를 할 때는

배수통에 들어있는 호수를 다라이에서 빼놓으면 된다.

그러면 뒷베란다에 있는 하수도로 저절로 물이 버려진다.

애벌 설거지가 끝난 그룻을 헹군 물이나 과일, 채소, 현미를 씻은 물은 다라이에 모아두었다가

물조리개에 부어 베란다 텃밭에 주기도 하고 걸레를 빨 때 사용한다.

쨍쨍한 여름 햇빛 아래 베란다에 20개가 넘는 화분을 키우지만

이 다라이가 있기에 수돗물을 틀어서 식물들에게 물을 준 적이 거의 없다.

허드렛 물이 식물들 양식이 되고도 남아 걸레 빨래나 대안 생리대 초벌 빨래에 이용되는 셈!



정리가 안 된 상태의 뒷베란다.

세탁기 아래 공간에 빨간 다라이 통이 놓여있고 설거지 물은 거기로 모인다.

전 집주인께서 햇빛을 가린다고 붙여놓은 시트지는 언제 뜯을까나, 기냥 냅둔 모습이라 안습 -_-

(화학약품 없이 물리적으로 뜯어낼 방법을 고민 중이지만 쉽지 않네요 그랴;;)



애벌 설겆이 한 그룻을 씻고 헹군 물

약간의 부산물이 있지만 깨끗한 편이에요.:)



집을 처음 방문하실 때 추접스럽게 설거지 물까지 받는다고 타박하던 엄마가

세탁기에서 마지막 헹굼물이 나오자 "이게 설거지 물보다 더 깨끗하다!"하시며 세탁기 헹굼물까지 싸그리 모으셨다.


단, 이렇게 헹굼물을 받아서 이용하려면 합성세제를 덜 쓰거나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설거지 할 때 베이킹 소다나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 외에는 쓰지 않고

웬만한 설거지는 세제없이 물로만 닦는다.

빨래 세제는 생협에서 나온 천연세제나 거품 안나는 버블프리 세제를 이용하므로

헹굼물을 사용해도 베란다 텃밭에서 탈이 난 애들이 없었다.


마치 일본의 긴자거리에서 '꿀벌 프로젝트'를 할 때

꿀벌을 위해 긴자 거리의 가로수와 화단에 농약과 제초제를 쓰지 않기로 한 것처럼

헹굼물을 제대로 이용하려면 독한 세제를 써서는 안 된다.

설거지 할 때 습관적으로 세제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눈 딱 감고 세제 없이 설거지 해 보면 물도 적게 들고 깨끗하게 닦인다고 느낄 수 있을 듯.

난 고등어 구워 먹을 때처럼 강력한 냄새와 기름 벅벅이 수반되지 않는 한

베이킹 소다도 잘 안 쓰고 살림하지만 그룻은 뽀득뽀득하다.




합정동 무대륙 텃밭에 설치되어 있는 빗물 저금통.

건물 외벽에 달려있는 배수통과 바로 연결되어 있어 빗물이 콸콸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줄어들고

빗물도 양껏 받을 수 있는 대용량 크기에, 수도꼭지가 달려 수돗물 틀 듯이 간편하게 빗물을 사용할 수 있다.

나도 이런 빗물 저금통을 설치하고 싶었지만 앞뒤로 베란다가 있는 4층 집에 빗물통을 어디메에 설치한단 말이냐.

더군다나 이 빗물 저금통 설치하는데 약 80만원 정도가 든단다.

향후 가나다맨션 반상회 (다세대 빌라에서 이런 것도 하고 있음)에 나가

분위기 파악하고 대세를 장악한 다음 1층 빈 공간에 빗물 저금통을 설치하자고 밀어부칠 야심 가득~.



우리 집 다세대 빌라 뒷편에 작은 텃밭이 딸려 있는데

이 곳에 수돗물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모두 빗물통으로 텃밭을 가꾼다.

어여 빨리 멋진 빗물 저금통을 떡 하니 설치하고 싶구낭 ㅎㅎ



빨간 다라이 빗물통,

텃밭 곳곳에 이런 다라이 통과 플라스틱 통들이 놓여있다.



고무 다라이 통에서 빗물을 퍼서 텃밭으로 가져가시는 빌라 주민의 모습

(근데 몇 호 사세요? 엄청 채소밭이 실하시던데...

내 텃밭은 깻잎마저 무당벌레가 다 처묵처묵했는데!!!)



설거지 헹굼물을 먹고 자라난 바질의 모습.

바질 페스토 맹글 욕망에 이글이글 타고 있으니 어여 무럭무럭 자라주렴~ 지둘리고 있당!!



부엌 벽면에서 나를 바라보고 계신 북극곰님하~

가끔 내가 '왜 이러고 사남' 혹은 지지리 궁상처럼 느껴질 때

북극곰님이 보고계셔!가 힘이 된다.

이건 궁상이 아니라 즐거운 불편이고 '헬렌 니어링 스타일의 부엌놀이야'라고 정당화 팍팍 함시롱

허드렛 물을 모은다.



몸 피곤하다고 루즈해지지 않게

강박적으로다가 '환경' 표어와 포스터를 곳곳에 비치해두었다.

이 스위치 쪼큼 비싸고 일본에서 물 건너와 탄소발자국 크지만, 설치하고야 말았다.

(우리나라도 이런거 맹글어주란 말이에욧!)

'에너지를 절약하시요, 전기를 절약하시요~ 불은 껐니?'라고 스위치가 웅변한다.

아, 알았다고요. ㄷ ㄷ ㄷ



이건 부엌 벽에 붙여놓은 '휴지 아끼기' 스티커인데

부엌에서 음식하다가, 뭐 먹다가, 음식 흘리다가 휴지를 팍팍 꺼내 쓰기 쉬워서

'다 나무 잘라서 만든 거다. 휴지 사용 좀 줄여'라는 메세지를 전달하려고 붙여놨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식당 테이블 위의 냅킨 통에 이 스티커를 붙여놓으면 휴지 사용량이 15% 정도 줄어든다고 한다.

나도 쉽게 휴지나 키친 타올을 꺼내쓰는 대신

행주나 걸레, 손수건을 사용할 요량으로 스티커를 떡하니 모셔두었다.


아유, 이런 거 깨알같이 붙이다가 자원만 축나겄네, 라는 생각도 들지만

인생에 깨알같은 재미와 소박한 의미부여가 없으면 뭔 재미인겨.

헬렌 니어링도 아마 이해해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