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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부엌] 헬렌 니어링 스타일의 부엌놀이1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7. 7.

집안 일 중 요리와 청소가 제일 싫다.

좋은 일은 세탁기가 뱉어놓은 빨래 널기와 룸메가 해 놓은 음식을 먹는 것. (마이 룸메, 보고 있삼?)

그런 내가 일주일에 두 끼 정도, 약속이 있는 날에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먹는 거 빼고는

집에서 꼬박꼬박 밥을 해 먹고 다닌다.

그러니 싫어도 가장 오래 머무르는 집의 공간은 부엌데기처럼 바로, 부엌.

소박하고 손이 가지 않는 음식으로, 껍질 채 먹는 '마크로비오틱' 혹은 건강한 '헬렌 니어링' 스타일의 식탁이 좋다. (라고 쓰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아주 간단하게 요리해서 처묵처묵, 이라고 읽는다.)


부엌 리모델링도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스타일로 잡았다.

최대한 손이 적게 가는 공사, 사용자인 내 손이 적게 가는 공간, 그리고 동선은 짧게.
모양새를 위해 쓸 수는 있지만 낡고 촌스러운 자재를 뜯어내지 않기, 어떻게든 다시 사용하기.

공사하면서 지금까지 뜯어낸 자재 만으로도 한 트럭 분 나왔고

쉽게 썩지 않을 그 자재들이 땅에 묻혀 버려진다는 사실에, 죄책감도 한 트럭 분 만큼 쌓였다.
전주인이 남긴 싱크대와 수전과 건조대와 가스레인지를 끌어 안겠다고 마음 먹었다.




오마이가뜨! 커튼 레일까지도 안 뜯고 재사용했는데 쓰레기는 계속 화수분이시다.


인테리어 책에 펼쳐진 부엌과 카페 카운터 뒷편에 비치는 오픈형 선반 부엌이 눈에 선했지만 패스. 

오픈형 선반 부엌, 그러니까 싱크대 문 없이 선반 위에 인테리어 소품처럼 예쁜 그룻과 컵이 전시된 부엌은

손이 많이 간다. 문이 없다보니 청소할 때 그룻과 컵에 쌓인 먼지까지 털어내야 하니까 말이다.



20년 넘은 빌라라 해도 비교적 부엌은 깨끗했는데

(버뜨 클로즈업하면 타일 사이로 때가 ㄷ ㄷ ㄷ)

이 주황색 싱크대의 색감을 받아들이기가 힘드네 그랴

체리라도 따 묵어야 한다냐, 대략 난감.



가스레인지도 깨끗해보이지만 클로즈업 효과에 비친 손잡이 때는 그득그득.

이건 이미 3번째 가스레인지 청소를 한 모습인데

베이킹소다와 폐식용유로 만든 비누, 철 수세미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기름 때를 제거하는 전용 세제를 사 쓰면 지워질거라는데

그런 세제로 때를 제거하기보다는 클로즈업 안 하고 그냥 두루뭉실하게 살기로 했다.

뭐 어때, 가스레인지에 불만 잘 나오면 되지.

(했는데, 오른쪽 버너에 불이 잘 안 붙음으로써 '뭐 어때'가 무색해졌다능. -_-)



부엌 리모델링 공사 시작

가스레인지는 전 주인께서 남기신 유물.



싱크대를 뜯어내고 치수를 재고 계시는 사장님



타일은 안 됩니다!

타일 사이로 낀 음식 기름 때를 닦다가 걸레 집어 던지고 울었어유. ㅠ.ㅠ

그래서 타일이 아닌 유리로 싱크대 벽을 채우기로 했는데

그 밑작업으로 합판을 대는 중



수전과 싱크대는 모두 닦아서 그대로 사용



타일 대신 유리벽을 부착한 모습

유지하고 청소하는데  무조건 손이 덜 가는게 목표!

유리벽은 요리하다가 튄 기름이나 음식 때를 쉽게 닦을 수 있다.

타일보다 1.5배 정도 비싸지만 두고두고 손이 덜 간다는 점에서 돈 쓸 만 하다.

가스레인지 뒷 부분 벽에 기름 때 튄다고 시트지 붙이고 행주로 박박 닦아본 사람은 알쥐요?



우리 사장님께서 셀프로 부엌의 천장과 벽을 목재로 마감하셨다.

내가 쓰는 165센티미터의 냉장고 만큼만 빼 놓고 목재가 덧붙여진 모습.


합판은 '문화로 놀이짱'에 사장님과 내가 직접 방문해 쓰고 버려진 목재에서 나무 색깔을 맞춰 골랐다.

나는 합판 가격을 잘 모르지만 합판 6개 정도에 11만원, 마포구 내 배송료 2만원으로 총 13만원 들었는데

새 합판의 절반 정도의 가격이라고 한다.

'문화로 놀이짱'에서는 헌 합판에 박혀있는 못이나 타카 등을 모두 뽑아서 쓰기 편한 형태로 손질해준다.

자세히 보면 못 자국이나 색깔이 변한 곳이 있지만

헌 합판으로 새 부엌이 생겼다는 뿌듯함이 새록새록~

상처가 있기 때문에 헌 자재를 재활용해 쓰려면

공사 의뢰자가 그것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 '이걸 원해' 라고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한다.

공사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는 상태를 보고 하나씩 자재를 직접 골라야하고

공사 의뢰자 마음이 변해서 흠을 잡을까 염려돼 헌 목재를 재활용하기 어렵다.

나는 공사 사장님과 함께 '문화로 놀이짱'에 직접 방문했고 꼭 이것으로 공사해달라고 거듭 부탁드렸다.

('문화로 놀이짱' 소개는 신발장 설명할 때 자세히:)




자세히 보면 변색되거나 타카 자국이 나 있다.

웰컴! 오래된 합판이니 이미 본드 냄새는 다 날라갔을거 아니여?

게다가 나무 부엌 만든다고 나무를 새로 베지 않아도 됐으니, 그걸로 족하다.




기능상 문제가 없는 싱크대는 재사용하기로 했지만

천장과 벽이 밝은 나무로 마감되고나니 체리색 싱크대 색감은 더욱 '아니올시다'.

을지로에서 밝은 나무색의 시트지와 싱크대 손잡이로 싱크대를 리모델링 했다.

블로그 보면 셀프로 집을 다 고치지만

손만 대도 멀쩡한 물건이 고장 나는 '마이너스의 손'인 나는 제대로 시트지를 붙일 자신이 없었다.

친구 2명이 하루 꼬박 걸려 기포 하나 없이 시트지를 붙이고 나무 손잡이를 달아주었다.

원래 이런거 잘하는 친구들 없었다면 시트지와 손잡이 사다놓고 '홍반장' 불러서 해결할 뻔 했는데,

'마이너스의 손' 종자들은 괜시리 기포 만들고 낑낑대지 말고 '홍반장'을 불러 제대로 붙일 것을 추천합니다앙.  

괜시리 잘못 붙이면 싱크대 볼 때마다 마음에 스크래치 생기다가

다시 뜯고 새로운 시트지를 붙이는 시츄에이션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친구 시켜먹은 자기 합리화 줄줄줄~)

게다가 이 작업은 만만찮은 시간과 기술을 요하는데

'나름' 전문가 친구들도 싱크대 문짝 떼고 시트지 붙이느라 하루 죙~일 봉사했다.

Special thanks to 양갱, 마스터 선


버.뜨. 벽과 천장의 나무 마감재인 수성 바니쉬는 나 혼자 칠했다.

투명이라 실수해도 보이지 않아 '마이너스의 손'도 할 수 있는 작업이었기 때문.

힘 있고 튼튼하고 팔 아파도 목 아파도 견뎌내는 자세를 갖추면 된다.

자기 '깜냥'을 알고 할 수 있는 DIY만큼만 실천해보기를. :)



나무 손잡이는 을지로4가 자재상에서 구입, 개당 1,500원

시트지도 돌돌돌 말아서 몇 롤 구입

뭔가 모양새 만을 위해 자재를 사는 것이 마음에 거시기했지만

체리색 싱크대의 색감은 더욱 거시기했기에 싱크대 재활용에 치르는 값으로 생각했다. 




싱크대와 수전과 식기 건조대와 가스레인지와 예전의 부엌 구조가 그대로이다.

울엄마가 돈 좀 써서 싱크대 상판도 짝퉁 대리석 자재로 바꾸라고 권했지만 더 이상 손대지 않기로 했다.

타일 벽을 유리벽으로

싱크대 곳간을 내 살림으로

형광등을 LED 전구색 조명으로

김치냉장고와 양문형 냉장고로 발 디딜 틈 없었던 부엌을 작은 냉장고 한대로 채웠다. 




공사 끝나고 보니 남는 목재 자투리가 있어 선반으로 재활용한 모습.


부엌의 모양새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포스트를 했지만,

로우의 '가장 좋은 아침식사는 아침공기와 긴 산책'이라는 말이 와닿는다.

부엌에 머무는 시간보다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기고 집 앞에 있는 망원 유수지 (체육공원) 산책 시간을 더 길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