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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 House

[욕실1]초절전 변기와 단조 수도꼭지 그리고 노출벽돌

by 불친절한 금자씨 2013. 6. 23.

<섹스앤더시티>의 변호사 미란다는 여자 혼자 집 살 때 작성하는 서류가 변호사 자격증에 드는 서류보다 더 많다고, 

집 서류 더미에 싸인을 해대며 불평했는데

나의 경우 서류에 딱 반나절이 걸렸다.

집을 살 때 이웃의 동의와 집 주인의 능력 증명과 블라블락~가 필요한 미국과 달리

다이나믹 꼬레아는 무엇을 하든 간에 계약일에 잔금을 조달해내기만 하면 되었다. (그게 젤 어렵지, 암) 

계약서에 싸인하고 잔금 치르고 복덕비 내고

그 길에 등기소까지 한 달음에 내달려 셀프 등기를 하기까지 반 나절의 시간이 걸렸다. 

서류가 아니라, 부동산에서 만난 전 집주인에게 우리 엄마가 '결혼도 안 한 딸이 진짜 결혼을 안 할란갑다'라며

'집 사는 녀자=독신녀'를 한탄하는 소리를 듣는 시간이 더 길었을 거였다.

(전 집주인이 뭔 죄여 -_-)


나는 로망이 있는 녀자였다.

어릴 적부터 세수할 때 물이 계속 흐르는 소리가 나면 문을 벌컥 열고서

'세수란 건 물을 잠그고 세수대야에 물을 받아서 쓰는 거다'고 화를 내는 환경 파쇼, 환경 파시스트 아빠 덕분에

물이 어디서 졸졸 새는 소리만 들려도 간뎅이가 오그라들었던 나로서는 

이 좋은 세상, 6리터를 쓰는 절수형 변기가 나와있음에도

당췌 12리터나 9리터를 써야만 내려가는 변기를 내 마음대로 바꾸고 싶었다. 

한 번 내릴 때마다 3리터, 아니 6리터가 절약되다니! 페트병 1리터 6개란 말이닷! 그건 들기도 어렵다규!!

벽돌을 넣거나 물을 가득 채운 페트병을 넣어봤자 1~2리터 절약될 뿐,

게다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식의 만찬으로 무리를 하면 변기는 '미녀는 괴로워'의 시츄에이션을 연출한다.

만화 '미녀는 괴로워'에는 주인공 한나가 '뚱녀'가 산더미처럼 싸놓은 무리데쓰의 똥을 

젖가락으로 끊어 소분해 물을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신문 전면 광고마냥 클로즈업으로 만화책 2쪽을 모두 차지;;)


스마트 그리드를 장착한 서울의 브랜드 아파트에는 절수형이 있겄지. 

광고 보니까 거기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처럼 밖에 나가서도 보일러를 켜고 끄고 딴 세상잉께요.

그치만 도시 빈민 '시민단체 활동가'의 입장에서 이런 아파트에 입주할 가능성보다는

'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에서 나온 '10년에 100킬로씩 남하하면 살 수 있다'가 현실이었다. 

문제는 서울과 지방 전세값의 폭등세로 보아 10년이 아니라 5년에 100킬로씩 남하해야 할 판이고

길어진 평균 수명과 안 그래도 짧은 한반도의 사정 거리를 생각할 때

해남을 찍고 나면 투자 이민도 아니고 기술 인력의 이민도 아니고 어데 남하할 때가 없다는 거였다. 


4년 전 친구 셋과 돈을 합쳐 합정동 집에 1억 500만원으로 전세를 들어갔는데

2년 후 재계약시 2,000 만원 오르고 다시 재계약이 돌아왔을 때... 우리는 이사를 결심했다.

집은 전세 1억 6천에 내놨다가 계약일에 맞춰 사람을 구하니라 1억 5천으로 '싸게' 낙찰되었다.

as a result 4년 만에 전셋값은 4,500만원 뛰었다.

시방 뭬냐고 -_- 내 연봉을 한 푼도 안 쓰고 3년간 '숨만 쉬고' 살아도 4,500만원이 안 된단 말이닷!  

집을 보러 다니다가 우리 돈으로 갈 수 있는 다세대 빌라 전세의 경우

절수형 변기, 두꺼운 단열벽, 에너지 효율 높은 보일러 등 세입자의 지속가능한 생활을 위한 센스가 아니라,

하루 빨리 이 전세를 월세를 돌리고 말겠다는 의지 충만을 보았다.

자재를 직접 구입해보니 에너지 절약형 자재들은 2배 정도는 기본으로 비싸서

내가 집주인이라도 세 줄 집에 설치할 엄두가 안 나는 경우가 많았다.


화장실을 리모델링 할 때 꿈꾸던 나의 로망은 3가지였다.


1. 샤워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최대한 건식용 화장실을 만들자 (외쿡거 보시기에 좋아 보이더라)

2. 샤워부스 혹은 좌욕이 가능하도록 반쪽짜리도 욕조가 있으면 좋겠다.

3. 구조적인 에너지 절약의 지향

: '페트병' 타입의 개인적 노력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물과 에너지를 적게 쓰도록 셋팅한다.


로망은 컸지만 화장실은 이랬다.

이 놈의 천장을 뜯으면 쥐가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니겠지, 라고 의심이 들었다.

욕조를 설치하면 변기는 안방에 모셔야 할 만큼 작았다. 대략 세로 2미터, 가로 1.5미터의 세계.




타일은 군데군데 깨져있고 타일 사이에는 때가 껴 있지만 이 정도면 20년이 넘은 집 치고는 나름 양호했다.

합정동 오기 전에 살던 집 화장실에는 세면대가 없어서 세면대 있는 '입실 욕실'에 살아보고 싶었드랬다.

그 때 당시 로망은 화장실이 집 안에 있을 것, 따뜻한 물과 난방이 되는 곳, 쥐가 없는 곳이면 되었다.


목욕하고 나서 욕실 거울로 보면 내가 제일 예뻐보인다는 알전구 효과를 끄고 찍은 욕실 사진 


위에서 찍은 공사 전 욕실 모습


타일 사이로 끼는 곰팡이 때,

칫솔에 소다를 묻혀 너를 박박 닦을 때마다

나는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다.

"온 집안에 타일 사용 금지"를 내세웠지만

(타일이 구조적으로 내 노동력을 착취하는 시스템임)

결국 물이 항시 닿는 샤워하는 부분은 타일로 할 수 밖에 없었다. 

타일 대신 생각한 자재들이 물에 약하거나 강도가 약해 타일을 대체할 수 없었던 탓.


전 주인께서 깨끗하게 샤워기도 한 번 바꿔놓으셨다.

그러나 나는 녹색건설자재 책자에서 샤워기 안에서 밀려올리는 에어압으로

물을 조금만 틀어도 물이 콸콸 나오는 듯한 기특한 상품을 본지라 샤워기도 바꾸기로 했다.

 

세탁기는 뒷베란다에 놓을건데 안 그래도 좁은 욕실에 세탁기용 수도꼭지가 있다.

여기다 세탁기 놓으면 맞은편 변기에 앉을 때 다리 놓을 자리가 없어 양반다리를 해야 할 판 -_- (1.5미터 폭)   

수도꼭지 두 개를 포기하고 매설했는데

살아보니 걸래를 빨거나 물을 받을 때 세면대 쪽 수도가 아니라 낮게 자리잡은 수도꼭지 하나쯤은 있어야 좋다.


천장을 뜯는 공사 시작!

4층 빌라의 꼭대기 층인 4층이라 천장을 뜯자 건물을 싸고 있는 삼각지붕 아래의 공간이 나온다.


환풍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외부 공기를 끌어오지 못하고 벽에 둘러싸인 구조라

화장실 문을 열어 환기시키기로 하고 있으나마나한 환풍기는 설치하지 않았다.

 살아보니 화장실도 작은데 습식공간은 그 절반이라 문을 열어놓으면 1~2시간 안에 물기가 다 마른다.


뜯어놓은 화장실 천장의 모습

공사해주신 사장님께서(알고야, 등짝만 나오셨네;;) 요새 사람들은 '거친 것도 좋아하지 않아요?'라시며

드러난 벽돌에 뭐 하지 말고 노출 벽돌로 가자고 급제안하셨다.

노출 콘크리트, 노출 벽돌, 노출 뭐시기 트렌디하니 좋네요. ㅎ

천장이 높아지니 덤으로 화장실 확 트이고 커져 보이는 효과가 났다.

옆집으로 이어진 파란색 배관도 역시 노출시키기로 했다.


건식 공간과 습식 공간의 분리

수도꼭지가 있는 부분은 샤워부스가 설치될 예정이고

빨간 뚜껑이 있는 부분은 변기를 뜯어내자 정화조 연결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냄새를 막느니라 플라스틱 통 뚜껑으로 옷을 입힌 사장님의 센스)

변기를 놓을 부분은 건식으로, 방바닥과 같게 만들어서 새벽에 화장실 가려고 잠이 깨도

욕실 신발 안 찾고 그냥 맨발로 화장실에 쓰윽~들어가도록 했다.


타일을 바르고 변기를 설치한 보습

변기 부분은 건식이라 시멘트를 발라 단을 높였다.

그 전의 멀쩡한 변기는 한번 내릴 때마다 12리터를 잡아먹어서 초절수형으로 바꿔 달았다.

18만원대 변기가 대세인 시장에서 무려 37만원을 줬다. ㅠ.ㅠ


타일과 변기, 수전을 사러 을지로 4가로 왕림하였다.

녹색건축자재 책자에서 초절수 변기로 한번 내릴 때 4.8리터만 사용!을 보고 (울랄라!!)

그 제품을 찾았더니 가게마다 그건 공공장소나 회사, 기관에서 사용하는 펌프식 분사형 변기에만 해당된다고

집안용으로는 6리터 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손사래를 치셨다. 

책자를 들이대는 나에게 "그런 건 없으니 암만 돌아댕겨 봐라, 바보~ 없다니까" 식의 눈총을 몇 번 받다가 

'우노 UNO'라는 가게에서 "아, 4.8리터 초절수 변기가 있습니다"라고 들었다. 울라라 베베!!

사진에 나온 분께서 이 변기는 토네이도 형이라 적은 물로도 막힘없이 일처리를 해준다고 설명해주셨다.

다른 가게 안 가고 여기서 변기, 수전, 타일을 일괄 구매했다.

곰마워요, 아저씨! 로망을 버리고 6리터 변기 살 뻔했어유 -_-



여기서 잠깐! 대/소변 물을 따로 내리는 변기는 9리터/6리터 형이라 오히려 6리터 형보다 물을 더 많이 쓴다.


바로 내 37만원을 훌랑 잡수신 토네이도 형 변기다.

물도 조금 쓰는데 물탱크 높이가 별로 안 낮다.

높이가 좀 있어야 수압이 있어서 토네이도 효과를 일으킨다나 뭐라나.


보통 변기는 물이 변기 가운데서 분사되는데 이 토네이도 변기는 한 쪽 끝에서 나와

변기 사이에 움푹 파진 길을 타고 한 바퀴를 돌아 배수구로 사라진다.

그 기술이 적용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온 변기 중 물을 가장 적게 쓴다고 했다.



설치 중인 모습, 아직 샤워부스 가림막은 설치하지 않았다.


레이저로 구멍이 뚫어져 수압 낮은 집에서 물이 조금만 나와도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소나기 샤워헤드

머리카락보다 얇은 미세한 구멍이 물을 잘게 쪼개서 분사해 물을 적게 틀어도 시원함을 느낀다.

에어압 어쩌고는 고장 잘 난다고, 을지로에서 잘 취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패스


플라스틱 비누통 대신

작년에 제주도 환경활동가 대회 갔을 때 들렀던 강정마을 동해물 식당에서 구한

전복 껍데기에 만든 비누를 올려놓았다. 너도 강정의 평화를 염원하는 껍데기일테지? ㅋㅋ

(송진이 들어가서 색깔이 저렇지 재활용 빨래비누 아님 -_-)


내가 초무거운 녹색건축자재 책자를 들고 나타나 초절수 어쩌고를 찾자

'우노' 사장님은 그럼 수전도 납을 안 쓰는 친환경 자재를 쓰라고 알려주셨다.

도꼭지를 만드는 금속성형법에는 단조와 주조가 있는데

간단히 말해 단조(forged)는 쇠를 두둘겨서 만들고

주조(casting)는 몰드를 떠서 쇳물을 부어 제작하는 방식이다.

주조는 대부분 집에서 볼 수 있는 모양이 다양하고 곡선이 있는 수도꼭지인데

몰드를 뜨기 때문에 곡선 표현이 자유롭다.

단조는 단단하고 질기지만 직접 쇠를 두들려서 모양을 잡기에 직선형에 각져 있고 모양이 다양하지 않다.

그리고 주조보다 약간 더 비싸다. (고놈의 친환경은 매번 ㅠ.ㅠ)

사진에 보이는 수도꼭지가 납을 사용하지 않고 만든 단조형 수도꼭지이다.

대체로 네모지고 끝부분이 날카롭다.


내가 살던 집은 작아서 샤워와 세면대 꼭지가 연결된 경우가 많았다. 

사진처럼 세면대 수도꼭지로 물을 쓰다가 레버를 돌리거나 당기면 샤워기로 물이 나오는 형식 말이다.

그런데 물을 아끼려면 샤워기 전환시 버를 당겨 쓰는 수압형은 좀 불편하다.

일정 정도의 수압이 되어야 샤워기로 물이 나오기 때문에 물을 졸졸졸 틀어놓고 샤워하는 사람은

샤워기에서 물이 안 나오고 세면대 수도꼭지에서 물이 나오는, 씻다가 엿먹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일체형 샤워+수도꼭지를 구입할 때 오른쪽, 왼쪽으로 돌려서 물길을 전환하는 레버형을 골랐다.

물을 조금만 틀어도 샤워기에서 물이 끊기는 사태를 예방하고 싶었다.


샤워부스 유리 칸막이를 설치한 모습

토네이도 변기가 놓인 자리는 시멘트로 단을 높이고 장판을 깔아 방바닥으로 만들었다.


변기에 앉아 내 발을 내려다 본다.

실내용 실내화를 신고 화장실에 들어왔다. (왜, 발목이 원래보다 두껍게 나온게냐!!)

앞에 보이는 원목 책꽂이는 내 룸메가 집 근처 '가제트공방'에서 생애 첫 목공수업을 듣고 만들어온 작품이다.


LED 알전구에 뽀사시하게 나온 화장실 천장 모습

노출 벽돌이 거칠지만 그래서 좋다.

울엄마가 기겁하시기에 '요새 홍대 카페들은 다 이래'라고 구라를 보탰다.

다만 이 집을 고치면서 니스나 라카, 유성 페인트는 쓰지 않기로 했는데

벽돌에 물이 스며들까봐 투명 유성도료로 코팅했다고 한다.


조명빨 빼고 찍은 천장 모습 (어두우니 아이퐁 사진 썩스;;)

옆집으로 통하는 파란색 배수관이 못 미더워 태국의 섬이 나온 바닷가 사진을 난간에 올려두었다.

(파란색으로 깔맞춤하는 센스쨍이~)

알전구는 7와트짜리 고효율 인증을 받은 포스코 LED 전구다.

별다른 장식없이 망원시장 과일집 조명 디스플레이를 차용했다. (천장에서 알전구 늘어뜨리기 방식)


화장실 문을 열고 그 앞에서 화장실을 바라본 모습

샤워부스는 불투명한 유리로 설치해 샤워시 룸메가 변기에서 일을 봐도 서로 민망치 않게 했다. (냄새는 어쩌고 -_-)


샤워부스 문을 열면 보이는 모습

원래 폭 패인 자리는 샤워기를 틀어도 물이 닿지 않아 유리선반을 설치했다.


아래 사진은 화장실이 한 눈에 보이도록 아이폰5 파노라마로 찍었다.

이렇게 써먹을 곳이 있구나. ㅎ




화장실 편에는 4.8리터 초절전 변기 외에도 각고의 창조적 노력이 있었으니

사장님 왈 "이런 식으로 처음 공사해 봅니다"

그건 다음편에. :)


special thanks to 북센스 송주영 실장님, 공사 전 사진 촬영해주신 두하님,

그리고 을지로 4가를 하루 종일 함께 헤매고 다닌 친환경 디자이너 이경래 샘,

공사 맡아주신 김형순 사장님, 사장님 수하에서 작업하시고 공사 중 사진을 찍어주신 멋쟁이 님.

(공사 후 사진부터 질이 다르지 아니한가! 공사후 사진은 개발새발 내가 찍었다.)